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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가 금그릇을 쓰면 임금은 무엇을 써야 합니까

서필

950년이 좀 지난 무렵의 일입니다.


고려의 네 번째 임금 광종은 자신의 형인 혜종, 정종이 임금이었던 시절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형은 임금이면서도 임금의 자리를 노리는 신하들에게 암살 위협을 당하다가 비참하게 병들어 갔습니다. 임금이라는 사람이 궁전에서 혹시 누가 자기를 노릴까봐 항상 겁에 질린 모습으로 매일 덜덜 떨며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은 끔찍해 보였을 겁니다. 광종은 저런 일은 결코 자기에게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자식도 그런 처지가 되지 않도록 어떻게든 막아 보자고 굳게 다짐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만, 광종이 임금이 되자마자 자신을 위협할만한 신하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한 것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임금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950년 음력 1월 겨울에 갑자기 강한 바람에 나무가 뽑혔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사람들은 무슨 흉한 징조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광종은 날씨와 하늘의 별을 관찰하면서 점을 치고 나라의 운수를 알아 보려고 하는 관청인 사천대의 관리들을 불렀습니다.


"재앙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돌아 온 대답은 "덕을 닦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고려 조정에는 최지몽이라는 재미 있는 삶을 산 천문학자가 있었는데, 어쩌면 최지몽이나 그의 부하가 뭔가 이야기를 들려 주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중에 무시무시한 임금으로 유명해지는 광종이 이때는 정말로 열심히 덕을 닦습니다. 그냥 대충 흉내만 낸 것이 아니라 책을 열심히 읽고 학문을 깊이 연구하려고 상당히 힘을 기울여서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중국 서적인 "정관정요"를 열심히 읽기도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식회에게 세금 걷는 제도를 개선할 것을 명령한 것이나, 중국 주나라(후주)에 구리를 수출했다는 기록을 보면 나라 살림을 부유하게 하기 위해 재물을 모을 방법을 연구한 듯 싶기도 합니다. 959년에는 구리 5만 근, 그러니까 대략 30 톤 정도의 구리를 배에 실어서 후주에 보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고려시대 초마선이 몇 십 톤 정도는 실을 수 있었다고 하니, 당시 주로 사용하던 배 한 척에 구리를 가득 실었을 겁니다.


무엇을 했든 이 시절에 대해 후대의 최승로 같은 인물이 좋게 평가하는 것을 보면, 광종은 대체로 신하들을 너그럽게 대하고 학식이 풍부한 사람을 열심히 찾아 다녔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 모든 것은 언젠가 세상을 다 뒤엎어서 임금 자리를 위협할 만한 사람들을 모조리 공격하기 위한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시절 광종이 순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임금인 척 연기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누구를 어떻게 감옥에 집어 넣어서 어떤 식으로 제거해야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다 없앨 지 끝도 없이 고민하는 중이었을 거라고 저는 한번 생각해 봅니다. 그게 아니면, 책일 읽고 덕을 쌓는 척하면서 한 몇 년 열심히 살아 보려고 했지만 그러면서 가만 고민해 보니 역시 적들을 무자비하게 처치해야겠다는 결론을 나중에 내린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광종은 신하들의 세력을 약하게 만들고 자신의 자리를 튼튼하게 하기 위한 방법을 여러 가지로 궁리했습니다. 성주나 장군 출신 집안이 아닌 가난하고 평범한 집안 출신으로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찾아서 신하로 만들어 준 뒤에 자꾸 벼슬을 높여 주면서 자기 편이 되도록 해 나갔습니다. 이 사람들이 임금의 편이 되어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준다면, 아무래도 자신을 위협하는 친척과 세력가들을 견재하기가 좋을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차근차근 관리로 성장해 나간 인물 중 한 명이 서필이라는 사람입니다. 서필은 이천 출신의 인물로 "도필"이라고 하여, 간단한 문서를 쓰거나 수정하는 낮은 관리부터 시작한 인물이었습니다. 차근차근 그 유능함을 드러낸 그는 광종의 눈에 뜨여서 꾸준히 승진했고 어느새 제법 높은 벼슬을 살게 되었습니다.


광종은 이런 식으로 가난한 출신이지만 재주가 많고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뛰어난 신하 몇 명이 성장해 나가는 것을 즐겁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신하들이 더 많이 생기면 그들과 함께 임금 자리를 노리는 후삼국시대의 성주, 장군 출신 신하들을 언젠가 모조리 다 처치해 버릴 꿈을 꾸며 흐뭇해 했을 것입니다.


하루는 광종이 그렇게 아끼는 신하들 몇몇에게 상으로 금주기(金酒器), 즉 황금으로 만든 술 그릇을 내렸습니다. 더욱 더 충성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서필은 금주기를 받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너무나 사치스러운 선물이므로, 임금이 신하에게 단지 기분이 좋다고 내리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치스러운 상을 내리면 결국 낭비가 심해져서 나라에도 나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하가 금그릇을 쓰게 된다면, 임금은 도대체 무엇을 쓰게 되겠습니까? (臣用金器 君將何用 신용금기 군장하용)"


즉 이 말은 우선은 사치스럽게 살면 안 되며 낭비하면 안 된다고 경계하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높은 사람이 선물로 돌리는 물건의 의미에 대해 경계하는 말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높은 사람이 이렇게 대단한 선물을 돌리게 되면, 그에 걸맞게 아랫 사람은 더 큰 보답을 해 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아무래도 그렇게 보답해 주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점차 갈등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서필은 금주기가 너무 비싼 상이라서 오히려 받기 안 좋은 상이라고 이야기한 셈입니다.


이 말을 듣고 광종은 깨닫는 바가 있어서 감격하여, 이렇게 말했는데 이 역시 제법 운율이 맞는 말입니다.


"경은 보물인 것을 보물이 아닌 것으로 말하는 재주가 있으니, 나에게는 경의 그 말이야 말로 보물이 되는구나.(卿言爲寶 경언위보)"


서필은 광종이 듣기 싫어 하더라도 이렇게 바른 말을 하는 인물로 유명했습니다.


임금은 화가 나면 신하를 처벌할 수 있으니, 바른 말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는데 서필은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나중에 광종은 무시무시한 임금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마구 감옥에 가두면서도 끝까지 임금 자리를 잘 유지하여 보복 당하거나 망하지는 않습니다. 아마 서필 같은 이런 신하 몇몇이 다행히 가까이 곁에 있었기 때문인 듯 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광종이 너무 심한 짓을 하려고 할 때는 그래도 마지막 순간 말리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항상 책 읽기를 좋아하고, 학식이 풍부한 신하들의 말을 자상하게 들어 주던 임금이었던 광종은 짧게 보면 7년 길게 보면 10년 동안 그런 모습을 보여 주다가 준비가 완료 되었다고 생각하자 돌변했습니다. 아직 이 시대는 유럽에서 마키아벨리가 나타나려면 멀었던 시대입니만, 세상에 마키아벨리즘을 나타낼 만한 정치인이 있다면 광종 만큼 인생 자체가 마키아벨리즘인 사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 사극 같은 곳에서 매번 "사면초가"나 "삼고초려" 같은 중국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비슷비슷한 고사성어만 나오는 것이 좀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려시대에 인기 있었던 명언이나 유행어 같은 것을 한번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 오히려 한국사의 유명한 말을 더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 이야기 자체가 참신해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고려시대의 유명한 말인 만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영화, 사극 같은 것에서 주인공들이 옛 역사를 인용하는 대사로 써 먹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33편 정도만 소개해 보려고 하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대목 있거나 다른 의견 있으시면 언제고 덧글로 말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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