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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이 돌아가셨는데 일꾼들은 뛰면서 기뻐하네

정종

949년의 일입니다.


옛날 신라 시대에는 임금과 왕비의 자식을 왕자나 왕녀라고 부르고 그 중에서 임금의 후계자를 정하면 그 왕자만을 특별히 "태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고려 초기에는 임금과 왕비 사이의 아들을 모두 다 "태자"라고 부르고 후계자는 따로 "정윤"이라고 불렀습니다. 중국 당나라, 송나라에서 임금의 자식을 황자라고 부르고 후계자를 태자라고 부른 것이나, 조선 시대에 임금의 자식을 왕자라고 부르고 후계자를 세자라고 부른 것과 고려 초의 제도는 좀 다릅니다.


여러 왕자를 다 태자라고 부르는 정도의 문화다 보니, 아무래도 후계자로 선포되지 않은 임금의 자식도 임금 자리를 노리는 것이 조금은 더 쉬운 상황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해 봅니다. 만약 여러 태자들을 구분하기 위해 숫자를 붙여서 부른다면, 정종이나 그 다음 임금 광종이 왕건의 몇 번째 아들이냐를 헤아려서 삼태자, 사태자 같은 식으로 부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정종은 왕건의 아들이었는데, 정종의 장인어른은 후삼국시절 처세술이 뛰어난 성주였던 박영규였고, 정종의 장모님은 후백제의 공주였습니다. 즉 정종은 고려의 임금과 후백제의 임금 양쪽으로 가문을 이어 받은 대단한 출신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니, 온통 서로 속고 속이며 음모를 꾸며 죽이려고 드는 이 무렵 고려 궁중의 임금 자리 싸움에서도 정종은 매우 유리한 위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임금이 된 뒤 정종은 계속해서 겁에 질린 채 살아 갔습니다. 왕건 목소리의 환청을 들었다고도 하니 병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정종은 복이 들어올 만한 행동을 하고, 위험한 일에 대비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북방 이민족인 거란이 고려를 침공하려고 노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여차하면 30만명 규모의 "광군(光軍)"이라는 군대를 동원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사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직역하면 "빛의 군대"라는 뜻이 되는 "광군"이라는 이름도 독특해 보이는데, 정확히 어떤 뜻인지, 어떤 유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외에도 한번에 7만 석의 쌀을 자비를 베풀기 위한 불교 행사를 위해 사용한 적도 있다고 하고, 지금의 평양인 서경이 풍수지리적으로 나쁜 운을 막고 좋은 운을 트이게 하는 땅이라는 학설에 점차 심취해서 서경에 더 큰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기도 합니다. 특히 서경 건설 사업에는 사람들의 고생이 많아서 그 일에 동원된 일꾼들은 많이 힘들어 했다고 합니다.

 

정종 입장에서는 암살자와 음모꾼들이 득실거리는 당시의 수도, 개경이 너무 무서운 곳이어서, 그곳을 떠나 새로 건설한 도시에 가서 살고 싶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임금을 위협할만한 사람들의 힘도 덜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면, 정종이 이때 겁을 많이 내어 워낙 열심히 준비했던 덕분에 몇 십년 후 실제로 거란이 침공해 왔을 때 잘 막아낼 수 있었고, 서경도 번화한 도시가 되어 고려의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던 948년 음력 9월에 정종은 놀라운 일을 겪게 됩니다.


동여진에 속하는 소무개라는 사람을 비롯해서 이민족 무리들이 여럿 고려의 수도로 찾아 왔습니다. 이들 이민족 일행은 고려의 궁전에 들어 와서 정종에게 말을 7백필이나 바치고 여러가지 동여진의 특산물을 선물로 바치는 성대한 행사를 열었습니다. 항상 불안에 시달리며 환청을 듣고 겁에 질려 살던 정종도 오래간만에 기뻐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기뻐하는 척은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궁전의 천덕전이라는 건물에서 행사를 하는 도중에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졌습니다. 정종에게 선물을 바치고 있는 그 사람이 번개에 맞아 버렸습니다. 자기 앞에서 절하며 선물을 바치는 사람이 번개에 맞는 그 순간을 정종은 눈앞에서 본 것입니다. 그리고 곧 천덕전 건물 모퉁이에도 벼락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징조나 업보에 대한 생각이 많았던 정종은 그런 모습을 보자 바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동안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내가 나쁜 운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나 애를 썼는데 모든 것이 실패했구나. 하늘이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선물을 바치는 사람을 벼락을 떨어뜨려 죽이려 하고, 나도 하늘이 거의 죽이고 싶다고 생각해서 내가 있는 궁전의 건물에도 벼락을 떨어 뜨린 것 아닌가?'


음력 9월이면 가을 날씨라서 비가 많이 올 때도 아닌데 이런 일이 생겼으니 확실히 놀랄 만도 합니다. 뒤집어 보면 워낙에 운이 나쁜 인생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라 그렇게 복을 받으려고 애썼던 것일지요? 신하들의 부축을 받고 갔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정종은 너무 무서워서 쓰러졌던 것 같습니다.


결국 이때부터 정종은 힘을 쓰지 못하다가, 다음 해 음력 3월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임금 자리는 정종의 아우이자, 나중에 무시무시한 임금으로 잘 알려지게 되는 광종이 이어 받습니다.


요즘 작가들이 상상한 이야기에 가끔 나오는 것처럼, 만약 앞선 임금인 혜종이 암살 당했으며 그 배후에 정종이나 정종의 친척 세력이 직접적,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해 봅시다. 그렇다면 인자하고 착한 형인 혜종을 정종 자신이 임금이 되기 위해 암살했다는 그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무너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그 정종의 목숨 역시 누군가 노리고 있었다면? 물론 이런 이야기들이 진실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정종이 복을 구하고 나쁜 운수를 피하기 위해 노력한 온갖 일들이 무색하게 그냥 허무하게 일찍 목숨을 잃고 말았다는 공교로운 소식은 세상에 빠르게 퍼져 나갔습니다. "불공이니, 풍수지리니 하면서 그렇게나 복을 빌더니,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었나?"하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많이 돌았을 것입니다. 특히나 풍수지리 때문에 서경 건설 사업에 동원되어 고생했던 일꾼들은 복을 빌던 임금이 사망하자 오히려 너무 좋아서 팔짝팔짝 뛰면서 기뻐했다는 이야기가 "고려사절요"에 나와 있습니다.


경영에 너무나 폐가 되는 무능한 사장이나 회장이 회사에서 물러나겠다고 하면, 직원들이 오히려 즐거워 하고 회사 주식의 주가도 오르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그 역시 정종 임금이 죽었는데 일꾼들은 뛰면서 기뻐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겠습니다.



* 사극 같은 곳에서 매번 "사면초가"나 "삼고초려" 같은 중국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비슷비슷한 고사성어만 나오는 것이 좀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려시대에 인기 있었던 명언이나 유행어 같은 것을 한번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 오히려 한국사의 유명한 말을 더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 이야기 자체가 참신해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고려시대의 유명한 말인 만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영화, 사극 같은 것에서 주인공들이 옛 역사를 인용하는 대사로 써 먹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33편 정도만 소개해 보려고 하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대목 있거나 다른 의견 있으시면 언제고 덧글로 말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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