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재상 자리까지 오르는데 사계절도 걸리지 않으니

쌍기

956년의 일입니다.

950년에 임금이 된 광종은 대략 7년 동안 조용히 세상을 뒤엎을 준비를 했습니다. 어떻게 세상을 엎을지 책을 읽으며 궁리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미한 가문에서 자라나 별 세력은 없지만 자신에게만 충성할 신하들을 틈틈히 뽑고, 세금을 걷고 물자를 관리하는 제도를 고쳐서 재물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956년부터 958년 사이에 광종은 아주 거대한 변화를 일으켜 밀고 나갑니다. 아마도 한국사에서 지금까지도 아주 큰 영향을 끼치는 결정적인 변화가 생긴 순간이 바로 958년일 것입니다.

광종은 외국인 출신 인재에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자신의 임금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신하들과 세력이 강한 무리들을 제압하려면, 새로운 인재가 있어야 했습니다. 별다른 세력이 없으면서도 뭔가 아주 다른 정책을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외국인이라면 여기에 들어 맞았습니다.

마침 956년 당시에는 사신으로 중국 주나라(후주)에서 고려에 찾아 왔다가 갑자기 몸이 아파서 오래 머물고 있는 쌍기라는 주나라의 신하가 있었습니다. 광종은 쌍기와 가까워졌습니다.

쌍기는 중국 주나라의 문화와 주나라에 있는 제도 중에 고려에 도입하면 좋을만한 것들을 광종에게 제안했습니다. 광종은 그 말을 듣고 그럴싸하다고 여겨서, 쌍기를 아예 고려에서 영영 살게 하고 과감하게 높은 벼슬을 주어 실제로 그런 정책을 시행해 보게 해 주었습니다. 그냥 대충 이름만 좋은 벼슬 하나를 준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권한도 강하고 대우도 좋은 벼슬을 주어, 고려 조정의 학문, 문서에 관한 일들 중 많은 것을 쌍기가 직접 휘두르게 해 주었습니다.

이때 광종이 외국인인 쌍기를 얼마나 파격적으로 대우했는지, 나중에 최승로는 이 일을 언급한 글에서 "계절이 돌아 오기도 전에, 간단히 재상 벼슬 자리에 올랐다 (未浹歲時 便爲卿相 미협세시 편위경상)"이라고 썼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고려에 잠시 머물던 외국인"이었던 사람을 초고속 승진시켜서 1년도 되지 않아 더 높은 벼슬이 별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자리까지 올려 주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외국에서 온 고려 사정은 잘 알지도 못할 사람에게 그렇게 높은 벼슬을 주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사람도 무척 많았습니다. 당시에도 비판이 많았고 후대에도 이때 쌍기를 대우해 주는 것이 너무 과도했다는 평이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3년 후에는 쌍기가 고려에서 출세했다는 말을 듣고 쌍기의 아버지까지 고려로 건너올 정도였으니, 확실히 대우가 후하기는 후했던 것 같습니다.

이 무렵 광종은 쌍기 외에도 외국인 인재를 많이 데려 오기 위해서 정말 두터운 대우를 해 주고 있었습니다. 짐작해 보자면, 외국에서 온 인재를 그저 고려 사람과 그저 똑같이 대해 준다고만 하면 그것은 공평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외국 인재는 고려에서 사는 것이 낯설고 고려 말도 잘 모르기 때문에 똑같이 대해 주기만 하면 고려에서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고려 사람보다 좀 더 잘 대해 주어야 고려에서 사는 어려움을 참고 일을 해 나갈 수 있다, 그러니까 외국 인재에게 조금 더 잘해 주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더 공평한 것이다, 아마 그런 식으로 생각했던 듯 합니다.

심지어 광종은 외국 인재들에게 궁전에 드나들기 좋은 가까운 위치에 살기 좋은 집을 공짜로 나눠 주려고 했는데, 궁전에 드나들기 좋은 위치의 집이라는 것이 그렇게 많을 수 만은 없으니 오래 동안 일하던 신하들을 다른 곳으로 이사 가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집을 외국 인재들에게 주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일은 참다 못해 서필 같은 신하가 광종에게 “너무 심하다”며 지적할 정도였습니다.

역사 기록에서 주나라에서 고려로 온 쌍기의 재주가 아주 놀랍도록 뛰어났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쌍기가 무슨 큰 흠이 있었다거나 부정부패가 있었다는 기록도 눈에 띄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쌍기는 한 두 가지 새로운 정책을 이끌만한 재능이 있는 정도에 그치는 재주를 갖고 있었지만, 한편으로 정직하고 욕 먹을 짓은 안 하는 소박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광종은 그런 정도의 인물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어서, 바로 그 "한 두 가지의 새로운 정책", 그것만은 똑바로 확실히 해 내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무슨 일이건 외부의 사람을 뽑아 와서 내부에 큰 변화를 일으키려고 할 때는 그런 식으로 한 두 가지만 확실히 바꾸려고 시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던 듯도 보입니다.

이때 쌍기의 경우에는 자신이 해내야 할 그 "한 두 가지의 새로운 정책"이 다름 아닌 과거 제도였습니다.

벼슬하는 사람을 뽑을 때 시험을 치고,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답안을 써내게 한 후, 좋은 답안을 써낸 순서대로 합격자를 가려내서 뽑는다는 겁니다. 이런 제도는 중국 지역에서는 이미 시행되어 이제 정착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고려에서는 새로운 제도였습니다. 이 당시 고려의 신하들 중 다수는 후삼국시대에 자기 지역에서 어떻게든 높은 성벽과 많은 병력을 갖는데 성공했다는 이유로 신하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그런 실력은 별 소용이 없고, 시험을 쳐서 답안에 좋은 글을 써낸 사람이 신하가 된다는 것입니다.

충격적인 변화였지만, 사람들이 "더 공정하다"고 생각할 만한 제도이기는 했습니다. "더 유능한 사람을 시험으로 가려 뽑는다는데, 뭐가 나쁜가?"라는 말에 딱히 대답할 명분이 없기도 했습니다. 과거 제도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들이 고려 조정의 신하로 계속해서 들어 오는 통로가 됩니다. 그리고 결국 과거 제도의 시행 때문에 광종의 임금 자리를 위협하던 성주, 장군 출신의 세력가들은 훗날 완전히 밀려 나 힘을 잃고 역사에서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과거 시험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사람을 "지공거"라고 하는데, 쌍기는 지공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958년 음력 여름 5월 최초의 과거 시험을 실시했습니다.

나라에서 시험을 치르게 하고, 그 시험에 합격하면 공무원이 되고, 공무원은 무척 좋은 직업이며 사회에서 갑 중의 갑이 된다는 그런 사회가 바로 그 958년 5월 어느 여름날 시작된 것입니다. 이렇게 시험으로 공무원을 선발하고 그것이 많은 사람들의 선망을 받는 제도는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꾸준히 이어졌고, 1000년이 훌쩍 넘게 지난 지금의 한국에도 그 문화가 어느 정도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광종은 과거 시험을 한 두 번 해보고 만 것이 아니라, 꾸준히 해 볼 수 있게 계속 이어나가도록 했습니다. 쌍기의 뒤를 이어서는 왕융이라는 사람이 지공거가 되어 과거 시험을 치렀습니다. 왕융에 대해서는 쌍기 만큼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쌍기와 비슷한 부류로 묶일 만한 사람으로 보는 편이 맞을 듯 합니다.

초창기 과거 시험이 처음 나라에 정착될 때 20년 가까이 꾸준히 일을 맡았던 쌍기, 왕융 두 사람을 일컬어 성만 따서 "쌍왕(雙王)"이라고 부를 때가 있습니다. 고려 말의 학자인 이색이 자신의 시에서 썼던 말입니다. 공교롭게도 "쌍왕"이라고 하면 "뭔가 보통의 두 배인 임금"이라는 뜻도 되고, 불교에서는 염라대왕이라는 뜻으로 쓸 때도 있는 말입니다. 그러니 어감도 막강하게 들리는 "쌍왕"이라는 별명은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제도를 꾸준히 십수년간 밀고 나간 두 사람을 일컫기에 괜찮게 들립니다.

지금 한국은 수출 규모로 따지면 세계 6위, 7위 정도가 될 정도라서 전 세계에서도 다른 나라와 교류가 아주 많은 편인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외국인 출신인 인물이 시장이나 도지사가 된다거나 정부 부처의 장관, 차관이 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그런데, 1천년 전 고려시대 사람들은 다른 문화를 가진 외국인을 뽑아서 과감하게 큰 실권을 주는 방식으로 사회의 문화를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외국인에게 개방적인 고려의 이런 문화는 상당히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1123년에 중국 송나라의 서긍이 남긴 "고려도경"을 보면, 그때까지도 고려의 수도에는 중국 송나라 사람들이 많이 머물고 있으며, 그 중 몇몇에게는 고려 사람들이 접근해서 벼슬을 줄테니 눌러 앉아 살라고 권하며 유혹한다는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우리 송나라 사람들이 고려에서 이렇게 대접 받는다"고 송나라 사람 서긍이 자랑스러워 한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회에 도움이 될 인재라면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많이 받아들여서 고려 사회에 흡수하려고 했던 당시 사람들의 모습이 비치는 듯 보입니다.


* 사극 같은 곳에서 매번 "사면초가"나 "삼고초려" 같은 중국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비슷비슷한 고사성어만 나오는 것이 좀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려시대에 인기 있었던 명언이나 유행어 같은 것을 한번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 오히려 한국사의 유명한 말을 더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 이야기 자체가 참신해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고려시대의 유명한 말인 만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영화, 사극 같은 것에서 주인공들이 옛 역사를 인용하는 대사로 써 먹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33편 정도만 소개해 보려고 하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대목 있거나 다른 의견 있으시면 언제고 덧글로 말씀해 주십시오.

Jaesik Kwak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