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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인생이란, 예로부터 그러한 것이니라

왕건

943년의 일입니다.


그해 음력 4월 초여름이었습니다. 후삼국이 통일되고 평화가 찾아 온 지도 7년 정도가 흘렀습니다. 통일된 고려의 임금이었던 왕건은 60대 중반이었습니다. 그 무렵 왕건은 몸상태가 좀 이상해졌다는 것을 느낀 듯 합니다. 왕건은 이제 자신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직감했을 것입니다. 왕건은 그 전에 무엇인가 준비를 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왕건은 여러 신하들 중에 박술희를 불렀습니다. 항상 자기 옆에서 자신을 지켜 주던 무예가 출중한 장군이자, 자신의 후계자인 훗날의 혜종을 지켜주기 위해 특히 애쓰는 장군이었습니다.


"훈요를 써서 후세에 전하려고 한다. 아침 저녁으로 펴 보면서 오래오래 거울을 보듯이 반성하도록 하라."


왕건은 10개의 조목으로 되어 있는 글을 보여 줍니다. 그것은 고려의 임금이 정치를 하면서 따라야 할 조언을 써 놓은 것이었습니다. 왕건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그 글을 다음 임금에게 전하고, 그 임금은 그 다음 임금에게 전하여 대대로 물려 주라고 합니다. 흔히 "훈요십조"라고 하는 문서입니다. 1조, 후세의 간신들이 종교와 결탁하여 다투지 못하게 하라, 7조, 비판하는 말을 잘 듣고 농사 짓는 백성들이 실제로 일하는 어려움을 알라, 9조, 가깝다고 이유없이 벼슬을 주지 말고 항상 병사들을 사랑하고 애달프게 여겨라, 등은 지금도 그대로 교훈이 될 듯한 말입니다.


"훈요십조"는 대략 50년, 60년 정도는 잘 대물림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거란과 전쟁 전후로 원본을 잃어 버리게 되어서 한참 만에 겨우 죽은 최항의 집에서 체제안이 필사본을 구해서 다시 찾게 됩니다. 이때 "훈요십조" 원본이 어떻게 사라졌으며, 도대체 어떻게 다시 발견 되었는지, 다시 발견된 "훈요십조"의 내용이 정확한 지 등등에 대해 수수께끼가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참고로 왕건이 후대에 남긴 정치, 정책에 대한 글로는 정치의 유의 사항에 다룬 "정계(政誡)"라는 책 한 권과 신하들의 유의사항을 다룬 "계백요서(誡百僚書)"라는 글도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전해지지 않는 책이니 만약 발견 된다면 큰 보물일 것입니다.


"훈요십조"를 전한 지 한 달이 지난 5월에 왕건은 병이 났다고 "고려사절요"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고려사절요"의 기록을 따라가며 소개해 보겠습니다.


왕건은 아마도 병석에 누워서 일어나지 못할 지경이 된 듯 합니다. 주변에 왕건을 모시고 있는 신하들에게 아파서 그동안 일을 많이 못했으니 오랫동안 처리하지 못한 그 동안의 일은 후계자인 혜종과 의논하여 처리하라고 하고 자기에게는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 알려만 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왕건은 자신이 죽는 것을 너무 걱정하지 말라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병에 걸린 지 이미 20일이 지나면서 죽음이란 것을 그저 고향에 돌아가듯이 여기고 있으니, 무슨 걱정할 일이 있겠느냐?"


여기서 "죽음이란 것을 그저 고향에 돌아가듯이 여긴다"는 구절 "시사여귀(視死如歸)"는 아마 중국 고전 "한비자"에 나오는 말을 가져와 쓴 것 같습니다. "한비자"에서는 병사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쓴 말입니다. 아무래도 왕건은 젊은 시절 평생 전쟁터를 돌아 다니며 여러가지 전략, 전술을 고민했으니 그러면서 읽던 여러 책중에서 본 말 아닐까 생각합니다.


9일 후, 왕건은 병이 더욱 깊어져 거의 말조차 할 수 없게 됩니다. 왕건은 궁전에서 신덕전이라는 곳으로 갑니다. 임금이 세상을 떠날 위험이 높을 때 만약을 대비해서 가 있는 건물로 활용되던 곳인 듯 싶습니다. 아마 걸어 가지는 못했을 것이고 가마 같은 곳에 태워져서 움직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왕건은 김악을 불러 죽기 전에 남길 말을 글로 쓰도록 합니다. 이것이 임금의 유언장인 유조가 되었습니다.


겨우 유언장을 다 쓰고 나자, 왕건은 기운이 다했는 지 이제는 말도 더 하지 못하고 힘이 빠진 모습으로 자는 듯이 누워 있었습니다.


모여 있던 신하들은 울면서 누워 있는 왕건을 보았습니다. 누워 있는 병든 노인이 18세에 궁예의 부하가 되어 군인이 된 후, 59세에 후백제를 멸망시킬 때까지 거의 40년 간을 전쟁터에서 싸우고 또 싸우며 인생을 보낸 사람, 고려 왕조를 세운 인물로, 영웅으로, 호걸로, 인기 있는 사람으로, 너그러운 사람으로 유명했던 바로 그 왕건이었습니다.


신하들은 마음이 북받쳐 매우 슬프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왕건은 좀 놀랐는지 잠시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말을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이에 신하들이 울면서 겨우겨우 대답했습니다.


"성상께서는 모든 백성들의 부모가 되어 주시고 계신데, 오늘 이 모든 신하들을 버리고 떠나려고 하시니, 신들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그러자 왕건은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덧없는 인생이란 예로부터 그러한 것이니라."


잠시 후, 왕건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 사극 같은 곳에서 매번 "사면초가"나 "삼고초려" 같은 중국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비슷비슷한 고사성어만 나오는 것이 좀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려시대에 인기 있었던 명언이나 유행어 같은 것을 한번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 오히려 한국사의 유명한 말을 더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 이야기 자체가 참신해 보이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고려시대의 유명한 말인 만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영화, 사극 같은 것에서 주인공들이 옛 역사를 인용하는 대사로 써 먹어도 좋을 겁니다. 일단 33편 정도만 소개해 보려고 하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거나 다른 의견 있으시면 언제고 덧글로 말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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