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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살 임금님

혜종

945년 무렵의 일입니다.


왕건의 부인 장화왕후는 자황포를 보여 주면서 박술희 장군에게 자신의 아들을 지켜달라고 부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건의 장남이었던 그 아들이 자라나서 바로 고려의 두번째 임금 혜종이 됩니다. 장화왕후가 걱정했던 대로 장화왕후의 집안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그 아들인 혜종까지 얕보는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심지어 혜종이 임금이 된 뒤에도 임금 자리를 위협하는 사람들이 득실거렸습니다.


혜종은 젊었을 때부터 얼굴에 주름살이 너무 많아서 거의 돗자리 살 모양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별명을 붙여 추왕(皺王)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한문 표기가 추왕이니까, 실제로는 "주름살 임금님" "주름살 대왕" 정도의 별명으로 불렀을 것입니다.


혜종을 얕본 신하들이나 임금이 된 혜종을 질투한 그의 형제 자매 친척들이 뒤에서 그렇게 무시하고 놀리면서 부르던 별명이 퍼진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혜종의 얼굴에 주름살이 많이 생긴 이유가 바로 어머니의 미천한 신분 때문이었다는 조롱 비슷한 황당한 소문이 기록에 남아 있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혜종은 청소년 시절부터 아버지 왕건을 따라 후백제와 싸우는 전쟁터를 돌아 다니며 전투에 참전했으니, 병졸들이 임금의 자식인 줄도 모르고 "너네 부대 대장은 주름살 대왕이던데"라는 식으로 별명을 불렀던 것이 사람들 사이에 퍼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록에 혜종은 도량이 넓었다고 하니, 설령 병졸들이 그런 별명으로 멋모르고 자신을 불렀다고 해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냥 웃어 넘겼을 것 같습니다.


혜종은 왕건과 함께 전쟁터에서 싸운 사람답게 무예도 뛰어났습니다. 그냥 뛰어난 정도가 아니라 기가 막힌 실력이어서 아버지 왕건보다도 훨씬 무예가 더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특히 맨손으로 싸우는 권법, 수박에는 놀라운 실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945년경에는 임금이 된 혜종을 암살하려고 하는 암살자가 자고 있을 때 나타난 적이 있었는데, 혜종은 암살자의 칼을 피하고 놀랍게도 맨주먹으로 단번에 암살자를 쓰러뜨려 숨을 끊어 버렸습니다.


이 정도로 뛰어난 주먹 솜씨라면, 상상일 뿐이지만 혜종의 주먹 쓰는 비법이 비밀리에 전해져 내려와서 "추왕수박법" 정도의 이름이 붙어 있고 무예를 연마하는 사람들이 서로 배우려고 한다는 이야기도 상상해 볼 법할 정도입니다. 박술희 장군은 혜종이 7세 때부터 그를 보호해 주기로 결심했다고 하니, 7세의 혜종에게 장난을 받아 주듯이 주먹질 연습 놀이를 하는 박술희의 모습이나 박술희가 나중에 자신의 무예를 어린 혜종에게 전수해 주는 장면을 상상해 볼만도 합니다.


혜종은 스스로도 무예에 관심이 많았던 듯 보이고, 사람들 사이에도 혜종의 놀라운 무예는 제법 알려졌던 것 같습니다. 훗날인 1116년에 사당에서 예식을 치르면서 고려의 임금들을 칭송하는 노래를 지어 "태묘악장"이라고 부르게 되는데 여기에 혜종에 대한 노래도 들어 가 있었습니다. 그 가사를 보면 혜종을 두고 "때마다 항상 굳세고도 굳세시구나 (時惟桓桓 시유환환)"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노래 가사에서도 역시 무예가 뛰어 나다는 느낌입니다. 참고로 태조 왕건에 대한 가사에는 "많은 곳을 사랑하시고 편안하게 해 주시네 (寵綏多方 총수다방)"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혜종은 계속해서 암살에 시달렸습니다.


혜종을 암살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혜종의 형제들도 임금 자리를 노리고 있었을 것이고, 그 형제들과 손을 잡은 신하들도 많았습니다. 그 신하들은 다들 자기 세력을 갖추고 전투 경험이 풍부한 후삼국시대의 장군, 성주 출신이었습니다. 사람 한 명 처치하는 것 쯤 간단히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겁니다.


그 중에서도 "고려사"의 기록에서는 왕규라는 신하가 암살의 배후라고 지목하고 있습니다. 왕규는 원래 박술희 못지 않게 혜종을 보호해 줄 만한 위치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배신하여 혜종을 암살하려고 가장 먼저 나섰다는 것입니다.


"고려사"에는 왕규가 혜종과 그 아우들 사이를 이간질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혜종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혹시 혜종의 아우들과 왕규가 원수가 되었던 것일까요? 혜종의 아우들 중에는 후대에 무서운 임금이 되는 것으로 유명한 광종이 있었습니다. 신하들과 임금 친척끼리 서로 다투고 누명을 씌우는 가운데 왕규가 이러다가는 죽겠다 싶어서 먼저 손을 쓰기로 마음이 바뀐 것일까요? 혜종이 죽으면 그 후에 그 아우들 중에서 광주원군이라는 사람을 임금의 자리에 앉힌 다는 계획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광주원군은 왕규 딸의 자식, 즉 왕규의 외손자였습니다. 왕규는 다른 세력가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자신의 외손자가 임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정작 혜종은 왕규가 자신을 암살하려고 한다는 말을 뻔히 듣고도 왕규를 처벌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왕규가 정말로 범인인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워낙에 너그러운 성품 때문에 형제간에 싸우는 일이 너무 싫었기 때문일까요? 아버지와 함께 전쟁터에서 사람 죽는 모습을 워낙 많이 보았기 때문에 전쟁도 끝난 마당에 더는 살생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일까요? 임금 자리를 노리고 있는 형제, 친척들이 워낙 강한 상황에서 암살자를 대놓고 지목하면 다시 또 내란이 터질거라고 걱정했을까요? 아니면, 어머니 장화왕후가 고민했던대로 어머니 가문이 미천해서 자신의 편을 들어 줄 신하가 없으니 싸워봤자 질 거라고 생각했기 떄문일까요?


결국 혜종은 병을 얻습니다. "고려사절요"에는 "기뻐하고 성냄이 일정치 않다"는 말이 나와 있습니다. 심한 우울증을 얻은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공황장애를 겪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혜종은 암살 당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에 자신 근처에 항상 많은 호위병들을 두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무예가 뛰어난 장사가 찾아 오면 누구든 갑자기 너무 상을 많이 내렸기 때문에 궁전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아마 이 시기 고려의 궁중에는 다양한 무예에 뛰어난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 들었을 듯 합니다. 함부로 칼을 차고 들어 올 수 없는 궁전의 건물 안이니까 맨손 무예, 주먹질 솜씨를 겨루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소동을 일으키는 시기였을 것입니다. 가짜 차력사 같은 사람들이 혜종을 속이고 자신이 무예가 뛰어나다고 사기를 치기도 했을 지도 모릅니다.


얼마 되지 않은 945년 9월 혜종은 병이 깊어져 위험한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역사에서는 혜종이 정확히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 지에 대해 상세한 상황은 정확히 알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꺼림칙한 것이 있었는 지 혜종 곁에 신하들이 찾아 오는 것을 혜종의 주변 사람들이 막았기 때문입니다. 혜종이 암살을 두려워 해서 뽑아 두었던 호위병들이 오히려 병든 혜종이 외부와 소식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지만, 혜종이 그 호위병들을 뽑을 때 누군가 암살자를 그 사이에 몰래 끼워 넣었고, 그들이 혜종을 독살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암살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결국 왕규가 범인이었을까요?


그렇게 허무하게도 전쟁터에서도 살아 남은 혜종은 궁전에 들어 와서는 2년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30대 초의 나이로 임금이 된 지 불과 2년 만에 기쁘고 슬픈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병에 시달리는 가운데 돌봐 주는 사람도 없이 숨을 다한 셈입니다. 


고려의 임금들 중에 가장 무예가 뛰어났으면서도 마음은 가장 너그러웠던 임금, 후삼국을 통일한 최고의 영웅 호걸 왕건의 맏아들이면서도 주름살 임금님이라는 너무나 소박한 별명으로 불리던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 사극 같은 곳에서 매번 "사면초가"나 "삼고초려" 같은 중국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비슷비슷한 고사성어만 나오는 것이 좀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려시대에 인기 있었던 명언이나 유행어 같은 것을 한번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 오히려 한국사의 유명한 말을 더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 이야기 자체가 참신해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고려시대의 유명한 말인 만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영화, 사극 같은 것에서 주인공들이 옛 역사를 인용하는 대사로 써 먹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33편 정도만 소개해 보려고 하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대목 있거나 다른 의견 있으시면 언제고 덧글로 말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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