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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다섯 가지 덕목

최원

936년의 일입니다.


이 무렵의 이야기에 대해서 언급하는 기록 중에 고려 고종 때인 1254년에 최자가 낸 "보한집"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고려시대의 글과 문학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거리들을 모아 놓은 책으로 이인로가 낸 "파한집"의 속편을 자처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보한집"의 책 맨 처음 시작 부분이 다름 아닌 고려 태조 왕건에 대한 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맨 먼저 소개하는 글은 태조 왕건이 후삼국시대를 끝내고 평화가 온 후에 드디어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는 감격을 담아 썼다는 글입니다. 바로 개태사 발원문입니다.


우선 눈에 뜨이는 것은 글을 쓴 시점을 설명하면서 후백제를 멸망시킨 것 뿐만 아니라 발해의 난민들까지 모두 받아들인 때로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시기 북쪽의 이민족인 거란의 침공을 받고 발해는 결국 멸망하게 되는데 거란에게 쫓겨 온 발해 사람들 중에는 고려로 넘어 오는 난민들이 있었습니다. 그 숫자는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왕건은 그들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였는데 그 일이 완료된 것을 후삼국통일과 같이 언급하면서 그 후에 평화가 찾아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왕건이 발해 사람들을 과감하게 받아들인 결정은 쉽지만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발해 주민의 상당수가 고구려 계통이라고 하지만, 고구려가 멸망한 것이 약 250년 전이었습니다. 지금 중국에서 사는 조선족과 한국인들의 문화가 불과 40년 정도 교류가 없는 사이에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를 생각한다면, 250년 동안 다른 나라가 되어 갈라져 있었던 고려 지역과 발해의 문화 차이는 심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발해의 구성원 중 상당수는 보다 먼 이민족처럼 생각했던 말갈족 계통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결과를 놓고 보면 과감하게 발해 난민을 대거 포용하기로 한 왕건의 전략은 결국 맞아 떨어진 듯 보입니다.


일단 새로운 문화와 기술을 가져온 발해인들 자체가 고려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한때 발해는 해동성국으로 불리웠던 나라였던 만큼, 고려와는 다르면서도 잘 발전한 특유의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장점을 고려가 흡수할 수 있었다면 확실히 고려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돌아 보면 명분도 괜찮아 보입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때에는 고구려 땅의 많은 부분을 잃었고 결국 나중에 그 자리에는 발해가 들어섰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에 와서 고려가 발해 난민들을 받아 들인다면, 신라가 했던 통일의 한계를 넘어서서 이제는 고구려도 더 잘 계승하는 더 완벽한 통일을 해낸다는 의미를 내세우기 좋을 것입니다. 신라에 비해 고려가 뭐가 더 발전한 나라냐고 누가 물었을 때 대답하기 좋다는 이야기 입니다. 고려가 고구려의 다른 이름인 고려라는 이름을 나라 이름으로 그대로 쓰고 있는데, 그게 과연 걸맞는 나라냐고 누가 따졌을 때에도 좋은 답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례를 살펴 보면 왕건이 발해 난민들을 고려에 받아 들일 때 그냥 고려 땅에 와서 살게 해 주는 정도가 아니라, 그 중 일부에게 높은 벼슬을 주면서 좋은 대우를 제시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외부에서 건너 온 난민이 적응해서 살려면 아무래도 원래부터 고려에 살고 있던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불리한 여건에서 살게 될테니, 벼슬을 줄만한 난민에게는 오히려 살짝 높은 벼슬을 주어 적응해서 살기 더 좋게 만들어 준 것 같은 느낌입니다. 과연 그에 걸맞게 발해 난민 출신의 인재가 잘 적응해서 고려를 위해서 공을 세운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한편, 이렇게 발해 난민을 대거 받아 들였던 까닭 중에는 사실 왕건 본인의 정치에 도움이 되는 점을 노린 면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저 난민을 돕는 것이 착한 일이다, 고구려의 후예니 받아 주어야 한다는 그럴싸한 명분 뿐만 아니라 왕건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왕건은 전국 각지의 수 많은 성주, 장군들의 힘을 모아 후삼국을 통일한 상황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부하들이 언제 배신할 지 모릅니다. 혹은 몇 십년 동안 전쟁을 하며 충성스러운 병사들을 거느려 온 명망 높은 왕건 자신은 겁을 내더라도 왕건의 후계자 시대가 되면, 임금 자리를 노리는 배반자들이 나타날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 사람들인 발해 난민들을 받아 들이면 이 사람들은 모두 왕건에게 은혜를 입고, 왕건 덕분에 고려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이니 왕건 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또 이 사람들 중에 인재를 뽑아서 일을 맡긴다 한들 이들은 전국 어디에도 자기 세력의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니 나중에 왕건이나 왕건의 후계자를 위협할 가능성도 적습니다. 즉 발해 난민들을 나라에 받아들이면 받아들일 수록 신하들이 배반하려고 할 때 왕건 편이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셈입니다.


아마 그런저런 이유로 왕건은 발해 난민들을 잘 대접했지 않았을까 저는 추측해 봅니다.


왕건이 글을 써 주었다는 "개태사"라는 절은 "개태(開泰)"라는 말 자체가 직역하면 크게 연다는 의미이니, 바로 통일 시대를 멋지게 시작한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왕건이 써 준 그 글의 내용은 후삼국시대의 혼란이 어지러웠는데, 몇 십 년 동안 왕건이 전국 각지를 돌아 다니며 전쟁에 전쟁을 거듭한 끝에 이제 드디어 후삼국을 통일하고 발해 사람들까지 받아 들여 세상에 평화를 가져 오는데 성공했으니 무척 기쁘고 앞으로도 좋은 시대가 이어지기를 기원한다는 줄거리입니다.


이때 전쟁에 결국 승리하여 기쁜 장면을 표현한 말이, "개창부천 환성동지(凱唱浮天 歡聲動地)"입니다. "환성동지"는 "환호성이 땅을 흔든다"는 뜻이니 흔한 표현입니다. 그에 앞서 나오는 "개창부천", 즉 "개선의 노래가 하늘에 떠 있다"는 말은 좀 더 재밌어 보입니다. 너무 기뻐서 흥에 겨운 수많은 군사들이 개선의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계속 울려퍼지고 있으니 마치 멀리서 들으면 그 노랫소리가 하늘에 붕 떠 있다는 듯한 그 축제 분위기 같은 느낌이 잘 전해 오는 듯 합니다. 비슷한 표현이 다른 고전 등에 사례가 있는 지 궁금합니다.


왕건이 지었다는 글에 군데군데 재미난 표현은 더 보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각오로 전쟁에 임했느냐는 기억을 돌이키면서, "위로는 불교의 힘에 기대고, 다음으로 현묘한 위엄에 의지했다(上憑佛力, 次仗玄威 상빙불력 차장현위)"라고 썼다든가, 온갖 방식으로 싸우며 다양한 고생을 했다고 할 때 흔히 쓰는 "산전수전 다 겪으며", 라는 말 대신 "수격화공(水擊火攻)"이라고 해서 "물로 때리고, 불을 지르고 하면서" 싸웠다는 말을 쓴 것도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고려사절요" 등에는 나중에 왕건이 후손들에게 "훈요10조"를 물려 주던 때 전쟁터에서 자신이 고생하던 것을 돌이키며 "여름에 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겨울에 추위를 피하지 않았다(夏不畏熱 冬不避寒 하불외열 동불피한)"라고 말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만큼 날이면 날마다 전국 곳곳 전쟁터를 돌아 다니며 힘들게 싸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저렇게 고생한 기억이 절절한 것을 보면 부자집 자식으로 태어난 왕건이 전쟁 중에 가끔씩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목숨 내어 놓고 별별 모험을 하고 있는 건가, 그냥 후삼국통일이 되면 되고 말면 말 일인데. 아버지처럼 개성에서 마음씨 좋은 부자 노릇만 하면서 편안하게 집에서 놀며 한 평생 살아도 되는 인생 아니었나, 내가 이게 무슨 고생인가"하는 생각을 할 때도 아주 가끔은 있지 않았을까 상상도 해봅니다.


"보한집"에는 왕건의 글 뒤에 최원이라는 사람이 왕건이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을 축하하며 올린 글을 요약해서 옮기고 있기도 합니다.


최원은 왕건의 업적을 돌아 보면 후손들에게 물려 줄 만한 제왕의 덕목이 다섯 가지 있다고 칭송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유교 경전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덕목인 5상(五常)과 견주어 "제왕이 후대에 물려 줄만한 다섯가지 덕목(帝王垂統之五常 제왕수통지오상)"이라고 썼습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왕건의 업적에 보이는 제왕의 다섯 가지 덕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인용(仁勇) - 불리할 때에도 신라의 구원 요청을 과감하게 들어준 것

2. 지신(智信) - 망해가는 다른 나라 사람이 보살핌 받을 수 있겠다고 찾아 올 만큼 믿음을 준 것

3. 관인(寬仁) - 숙적인 견훤이 찾아 왔을 때에도 보복하지 않고 받아준 것

4. 의명(義明) - 반란 혐의가 있는 자들을 뚜렷이 밝혀내서 제거한 것

5. 인흡(仁洽) - 백성들이 풍족하게 살 수 있도록 많은 것을 베풀고 너그럽게 대한 것


뒷 글자만 따 보면, "용신인명흡"이 되는데, 대략 옳은 일을 하는 용기, 다른 나라가 따를 수 있을 만한 믿음, 적 또한 품어 주는 너그러움, 죄를 밝히는 분명함, 여러 사람들에 대한 넉넉함, 이상의 다섯 가지를 말한다고 볼만 하겠습니다.



* 사극 같은 곳에서 매번 "사면초가"나 "삼고초려" 같은 중국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비슷비슷한 고사성어만 나오는 것이 좀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려시대에 인기 있었던 명언이나 유행어 같은 것을 한번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 오히려 한국사의 유명한 말을 더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 이야기 자체가 참신해 보이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고려시대의 유명한 말인 만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영화, 사극 같은 것에서 주인공들이 옛 역사를 인용하는 대사로 써 먹어도 좋을 겁니다. 일단 33편 정도만 소개해 보려고 하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거나 다른 의견 있으시면 언제고 덧글로 말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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