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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왕원손

융대

1007년의 일입니다.


이 해에 천추태후 시대 최악의 사기 사건이자 부정부패 사건이 터집니다. 자신이 옛날 신라 원성왕의 후손이라면서 "원성왕원손"이라고 칭했던 경주의 융대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5백명의 노비를 뇌물로 조정의 중요한 인물들과 요석택 김씨라는 궁녀에게 돌렸습니다. 그런데 마침 노비 5백명은 융대의 속임수로 억울하게 노비로 몰린 사람들이라서 문제가 아주 커지게 됩니다.


노비 5백명이면 어느 정도 규모의 사기 사건일까요? 이우연 선생이 "조선 후기 노비 가격의 구조와 수준 1678-1889"라는 논문에서 다른 연구들을 언급해 놓은 것을 읽다 보면 조선시대의 경국대전에 나오는 노비 한 명의 가격을 환산해 보면 약 666일 분의 임금이라고 합니다. 만약 요즘의 최저임금 기준을 사용한다면, 2019년 최저임금은 월급으로 174만5150원이고 666일은 대략 22개월이므로, 노비 한 명의 가격은 약 3천8백만원 정도가 됩니다.


그러므로 1007년의 원성왕원손 사건은 요즘으로 치면 금액으로만 대략 190억원대의 사기 사건입니다. 게다가 생사람을 노비로 만든 사건이기 때문에 5백명이 자유를 잃어 버렸던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면 굉장히 규모가 큰 사기 사건이라서 천년이 넘게 지난 고려 시대의 사건인데도, 마치 대한민국의 1980년대초, 대형 사기 사건에 높은 분들 이 사람 저 사람이 연루되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줄 정도입니다.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이 사건을 전해 듣고 목종 임금은 분노했고, 그래서 연루된 신하들과 요석택 김씨를 처벌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가장 간단하고 쉽게 원성왕원손 사건을 살펴 본다면, 이것은 천추태후 시기에 조정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는 점을 나타내는 범죄일 것입니다. 천추태후의 애인인 김치양이 뇌물을 좋아했다고 하니 조정 전체에 부패가 만연해서 너도 나도 뇌물을 집어 먹는 시대가 되었고, 그 중에서 워낙 커다란 부패 사건이 있어서 도저히 가릴래야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큰 사건이 되어 결국 드러나 처벌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사건을 자세히 살펴 볼 수록 혹시 좀 더 복잡한 일 아닌가 하는 생각도 저는 해 보게 됩니다.


송광사 고문서라고 하는 문서 꾸러미에는 고려시대 노비문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처 국가문화유산포털 - 공공누리1


우선 이 사건이 노비 사건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따져 볼만 합니다. 앞서서 광종 시대의 안검노비 정책에 의해서 수많은 노비들이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성종 시대에는 노비였다가 자유를 얻은 사람을 다시 노비로 되돌릴 수도 있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노비였다가 자유를 얻은 사람이 예전 주인을 욕 보이면 다시 노비로 되돌린다는 조항이 역사 기록에 보입니다.


그렇다면 아마 이런 조항을 이용하거나, 이렇게 노비 제도가 오락가락하는 혼란을 이용하는 사기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원성왕원손 사건의 주범인 융대도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사기를 쳐서 보통 사람 5백명을 하루 아침에 자신의 노비로 만드는데 성공했던 듯 싶습니다.


융대가 자신이 원성왕원손이라고 주장했던 것을 보면, 김씨로 성을 쓰면서 김융대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도 어찌 보면 현대에 가끔 "내가 옛날 독재자 누구누구의 친척인데 그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어서"라는 식으로 사기를 치는 사기꾼이 있는 것과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이런 정황을 보면, 융대라는 자는 배짱도 좋고 수완도 있는 전문가에 가까운 사람이면서 범행을 한 듯 싶고, 예전부터 부유하게 세력을 만들어 이곳저곳에 줄을 대고 있었던 인물인 것 아닌가 추측도 해 봅니다. 5백명이나 되는 사람을 노비로 만들었다고 하니, 이런 어마어마한 일을 꾸미는데 정치인, 신하, 임금의 총애를 받는 궁녀 등의 권세를 활용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융대가 사기를 칠 때 성종 시기의 법 조항을 이용했을 것 같다는 점과, 이 사건이 성종 시기에 많은 인재들의 출신 지역이었던 경주가 얽혀 있다는 점은 조금 더 따져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종은 경주를 중요한 도시로 여겨서 말년에 이례적으로 경주에 직접 찾아 가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융대는 옛 성종 시기의 실력자들, 세력가들과 가까운 인물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이 사건에 얽혀 처벌 받은 인물 중에 한인경이라는 사람은 오래전부터 벼슬 살이를 했던 인물이었고, 과거에는 중국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 왔으니 성종 시기의 주요 정책이었던 송나라 제도를 도입하는 일에 관연했던 인물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원성왕원손 사건으로 처벌 받은 인물들이 어쩌면 주로 성종 시기의 옛 신하들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천추태후는 성종 시기에 성종과 대립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완전한 제 상상에 불과합니다만, 그렇다면 이 사건은 오히려 천추태후가 자신의 반대파를 공격하기 위해 성종 시대부터 자리잡고 있던 벼슬아치들의 부정부패를 들추어 내어 뒤엎은 사건 아니었을까요?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고려사절요"에서 이 사건의 핵심 인물로 왜인지 요석택궁인 김씨라고 불리웠던 사람을 지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호칭이 "요석택궁인"인 것으로 보아서, 명문 가문 출신으로 임금의 정식 부인이나 후궁이 되지는 못했지만 궁녀 중에서 특히 사랑을 받아서 "요석택"이라는 궁전에 있는 건물 하나를 차지하게 된 인물로 보입니다. 요석택이 목종의 총애를 받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요석택의 성이 김씨인 것을 보면 부유하지는 않더라도 나름대로 괜찮은 가문 출신일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사기 사건의 중심인 융대의 친척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사건의 실체를 제 나름대로 상상해 보기 위해, 요석택이 목종과 내밀한 사이에서 아주 가까이에 있었던 사람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 보려고 합니다. 저는 목종과 천추태후 반대파 신하들이 1002년, 1003년 경에 천추태후에게 반발하려고 나섰던 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목종과 아주 가까운 요석택의 부정부패 문제를 공격한 것도 역시 천추태후가 반대파를 눌러 버리기 위한 작전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렇게 이야기를 만들어 봅니다.


천추태후의 기세에 눌려 있던 조정에서 천추태후를 싫어하던 반대파들은 천추태후에 저항하기 위해 일을 꾸미고 있었습니다. 목종은 천추태후의 아들이면서도 어머니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어느 정도 거기에 이끌려 있었습니다.


목종의 정식 부인은 아마도 정략 결혼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천추태후의 뜻대로 한 결혼이었을 것이고, 어쩌면 천추태후가 목종을 가까이에서 감시하기 위해 심어 놓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니 목종은 이런 자신의 마음을 부인에게도 함부로 마음을 털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궁녀 중에 한 총명한 사람과 목종은 가까워집니다. 바로 요석택입니다. 목종은 요석택을 중심으로 신하들과 의논하면서 천추태후의 위세에서 벗어날 방법을 꾸밉니다.


천추태후는 그런 사실을 눈치 챕니다. 천추태후는 요석택과 반대파들을 내쫓기 위해 어떻게든 흠이 될 만한 일을 찾고, 마침 융대 사건을 터뜨려 이들을 모두 망하게 해 버립니다.


물론 그냥 재미로 해 본 상상일 뿐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 일은 아닙니다. 이렇게 상상한 이야기가 또 아귀가 정확히 맞아드는 것만은 아닙니다.


사건에 수상한 점은 더 남아 있습니다. 우선 "고려사절요"등의 역사 기록에서는 정확한 설명 없이 괜히 요석택을 사건이 핵심 인물인것처럼 기록해 놓아서, 왜인지 "임금이 사악한 궁녀에게 너무 빠진 것이 문제다"는 느낌을 주도록 서술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래 놓고는 사건의 처벌에 대해 한인경과 김락, 두 신하는 유배를 당했지만 요석택은 구리 100근을 벌금으로 내게했다는 이야기 외에 다른 처벌을 당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게다가 정작 사건의 주범인 융대에 대해서는 융대가 잠적, 도주라도 한 것인지 처벌에 대해 아무 기록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기록이 몇 군데 생략 되었다고 생각하고 넘어 갈 수도 있는 문제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 보니 도대체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는 수수께끼로 남습니다. 어쩌면, 목종이 빠져 들었다던 요석택이 사실은 천추태후 쪽에서 몰래 심어 놓았던 함정이었다고 보고 완전히 다르게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융대는 재빨리 손을 털고 잠적해서 완전범죄에 성공했고 그래서 더 이상의 기록이 없게 되었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렇다면 융대는 이름을 바꾸고 어디인가에 정착해서 명문가 출신의 갑부인 척 하면서 살았을 것이며, 그 대대손손 자손들도 번성하여 아마 지금도 그 자손은 조상이 1000년전의 완전범죄 사기 사건 한 탕으로 성공한 까닭에 자신이 부유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이 나라 어디인가에서 살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 사극 같은 곳에서 매번 "사면초가"나 "삼고초려" 같은 중국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비슷비슷한 고사성어만 나오는 것이 좀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려시대에 인기 있었던 명언이나 유행어 같은 것을 한번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 오히려 한국사의 유명한 말을 더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 이야기 자체가 참신해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고려시대의 유명한 말인 만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영화, 사극 같은 것에서 주인공들이 옛 역사를 인용하는 대사로 써 먹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천추태후 시기까지만 다뤄 보려고 하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대목 있거나 다른 의견 있으시면 언제고 덧글로 말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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