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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조류 / 신혈소군

현종

1003년 경의 일입니다.


고려시대 임금이 남긴 글 중에서 가장 잘 쓴 글을 꼽아 보라면 현종이 어릴 때 썼다는 시도 충분히 후보에 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너무 멋진 시라서 저는 현종이 어릴 때 이런 시를 과연 직접 썼을까 의심할 정도입니다. 현종은 재능이 뛰어났던 사람이라는 평을 받고 있고, 현종의 아버지인 왕욱도 글짓기에 능했다고 하니 현종이 어릴 때 멋진 시를 썼다는 것이 아주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시가 썩 훌륭합니다. 저는 현종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나중에 다른 시인이 쓴 시가 하나 생겼는데 그게 "현종이 어릴 때 직접 이런 시를 썼다더라"라면서 와전된 것일 가능성도 있지 않나 상상해 봅니다.


이 시가 나오게 된 배경은 현종이 어릴 때 속세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고 쫓겨 나는데서 시작합니다.


현종은 그야 말로 연속극 소재가 될 이야기거리를 모두 타고난 사람이었습니다. 출생의 비밀, 어머니의 비극적인 최후, 아버지와의 애틋한 관계, 자신을 괴롭히는 친척, 암살 위협, 도주, 그리고 화려한 귀환과 다시 이어지는 전쟁, 또다른 기구한 사연들과 인생역정까지 없는 이야기 거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할만 합니다.


고려 임금의 핏줄을 이어 받은 부유한 명문가에서 태어난 사람이 이렇게 계속해서 골치 아픈 삶을 살게 된 데는 까닭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결정적인 것이 바로 1003년 무렵 고려 조정을 손에 넣고 있던 천추태후와 그 애인 김치양 사이에 자식이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당시의 임금인 목종도 천추태후의 아들이었으니, 새로 태어난 아기는 목종과 어머니가 같고 아버지는 다른 형제입니다. 그러니까 그 아기는 나이 차이가 스무살이 넘어 가는 목종의 아우라고 하겠습니다.


역사 기록에서는 천추태후가 이렇게 태어난 목종의 아우를 목종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준비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있었습니다. 목종은 그때까지 자식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오히려 천추태후 반대파와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목종이 합심해서 천추태후에 맞서는 분위기가 서서히 풍겨 나오고 있었습니다. 천추태후로서는 위협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1002년, 1003년 무렵에는 천추태후 반대 세력과 목종이 천추태후에게 대놓고 도전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고려사절요" 1003년 기록에는 목종이 "신하들이 아첨만 하고 있고, 임금에게 잘못된 일을 고치라고 용기내어 말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신 조정을 차지하고 있는 장본인은 천추태후였으므로, 저는 이 말이 임금인 목종이 어머니 천추태후를 비판하고 있는말이며, 동시에 천추태후에게 굽실거리는 신하들을 지적하는 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천추태후는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 싫었을 것입니다. 그나마 아들인 목종이 옥좌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아들을 조종할 수 있겠습니다만, 만약에 갑자기 목종이 임금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엉뚱한 사람이 임금으로 들어 온다면 큰 문제였습니다. 임금이 다른 사람일 때 반대 세력이 힘을 모아 천추태후를 공격하면 태후는 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것을 막고 대비하려면, 목종의 뒤를 잇는 임금도 자신의 손에 있는 사람이어야 했을 겁니다. 자신의 둘째 자식이자, 김치양의 자식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걸림돌이 되는 인물이 딱 한 사람 있었습니다. 바로 당시 목종의 친척 아우뻘로 태조 왕건의 후손인 어린이 왕순이었습니다. 이 왕순이라는 어린이가 미래의 현종입니다.


당시 현종의 나이는 열 한 살, 열 두 살 정도였습니다. 천추태후는 어린이 현종의 친 이모이기도 했습니다. 즉 현종은 천추태후의 친 언니인 헌정왕후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출생의 비밀 때문에 현종은 왕씨를 이어 받은 어린이였습니다. 당시 풍습상, 김치양의 자식인 천추태후의 둘째 아들보다는 왕씨인 현종이 후계자가 될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천추태후는 어린 현종이 후계자가 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려고 합니다. 천추태후가 사용한 방법은 현종을 속세에 떠나 불교에 귀의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김치양이 불교에 밝은 독특한 사상을 갖고 있던 인물이니, 적당히 어린이 현종에게 말을 시켜서 현종의 입에서 "저도 불교를 정말 좋아합니다"라는 말을 나오게 한 뒤에, "그러면 정말로 속세를 떠나서 깨달음을 얻는데만 집중하라"고 지시했을 수도 있고, "속세를 떠나지 않으면 너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는 식으로 겁을 주어서 제 발로 속세를 떠나게 만들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10대 초반의 어린 현종은 고려의 지배자인 이모의 뜻에 따라 속세를 떠나 지금의 북한산인 삼각산 신혈사로 들어가게 됩니다.


북한산. 가장 높은 봉우리가 백운봉. 백운대라고도 합니다. 출처 문화재청 공지사항 - 공공누리1


어린 현종이 도착한 신혈사라는 곳은 지금의 서울 은평구에 있는 북한산 진관사 근처에 있던 사찰입니다. 어찌 보면, 이 무렵 고려 역사는 유럽의 비잔티움 역사와 비슷한 느낌도 납니다. 임금의 어머니가 조정을 장악하고, 권력 다툼에서 누군가를 제거하기 위해 평생 종교시설에서 수도하라면서 보내는 등의 이야기는 한국사보다 비잔티움 역사를 소재로한 이야기에서 더 자주 보았다는 느낌입니다.


곧 천추태후의 조카이자 임금의 친척인 현종이 어린이 승려가 되어 삼각산에 들어 왔다는 소문이 주변에 퍼집니다. 사람들은 이 이상한 운명의 어린이를 두고 신혈사에 사는 작은 왕자라는 뜻으로 "신혈소군(神穴小君)"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직역하면 "신비로운 동굴의 작은 왕자님"이라는 뜻이 된다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이후의 신혈소군, 즉 현종에게는 더더욱 연속극 같은 역경이 몰아치게 됩니다. 기록에 따르면, 현종이 삼각산 신혈사에 머무는 동안에 천추태후 일파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현종을 없애 버리기 위해 몇 번이나 산 속으로 암살자를 보냈다고 합니다. 


어린이 현종을 불쌍하게 여긴 사찰의 늙은 승려가 방 가운데에 지하 비밀 통로를 만들어서 현종을 암살자로 부터 구해 주었다거나, 독을 탄 음식을 천추태후가 어린이 현종에게 보냈는데 현종이 먹기 전에 새가 날아 와서 먹고 죽은 것을 보고 겨우 피했다거나, 하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린이 현종이 절에 들어올 때 어느 승려의 꿈에 하늘에서 큰 별이 절에 떨어지더니 별이 용으로 변하고 그 용이 사람으로 변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래서 어린이 현종을 아주 극진히 모셨다는 더 전설 같은 이야기도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산 속에서 사는 어린이 현종의 삶은 점점 고달파졌을 겁니다. 왕후였던 어머니, 왕자님이자 멋쟁이였던 아버지가 모두 세상을 떠나고 고생만 하면서 살았는데, 이제 이 어린이는 거기다가 속세를 떠난 승려가 되어 험한 산 속에 들어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 시절을 보내던 중에, 어린 현종은 바위 아래 흐르는 아주 가느다란 계곡물을 보고 이런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한 가닥 물줄기 백운봉에서 내려 오더니 (일조류출 백운봉 一條流出白雲峯)

만리 푸른 바다로 가서 통하는구나 (만리창명 거로통 萬里蒼溟去路通)

바위 아래 작은 물이라 비웃지 말라 (막도잔원 암하재 莫道潺湲巖下在)

며칠이 안 지나서 용궁에 갈터이니 (불다시일 도룡궁 不多時日到龍宮)


멋진 시 입니다.


시 내용 자체는 그냥 바위 밑에 흐르는 한 줄기 아주 가는 물줄기를 보고 그 모습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서 그 물이 흘러 내려서 더 큰 시냇물에 합류하고, 그것이 더 큰 개천에 다시 합류하고, 한강에 합류하면, 결국 대양으로 나아가게 될테니, 저 작은 물줄기도 바다와 통하게 된다는 사실을 포착하여 눈 앞의 작은 현실과 거대한 꿈 같은 세상을 대비하여 시를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습을 그대로 노래한 시이지만, 이 시를 읊은 사람이 바로 다름 아닌 어린이 현종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시의 내용은 더 기막혀 보입니다. 지금 자신의 처지가 북한산 백운봉 아래에 갇혀 있는 보잘 것 없는 처지이지만, 결국에는 임금이 될 수 있는 큰 꿈을 품고 있다는 뜻을 은근히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용이 임금을 나타내는 짐승이기도 하고, 더군다나 고려 임금은 용의 자손이라는 전설이 널리 퍼져 있었으니, 이 시는 더욱 많은 뜻을 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강제로 속세를 떠나게 되어 사찰에 갇혀 있던 현종은 결국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이 시를 읊은 내용 그대로 결국 옥좌를 차지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러고 보면, 자신을 일조류, 한 가닥 물줄기라고 비유해서 "백운봉 물줄기가 가늘다고 비웃지마라, 강물로 흘러가면 곧 바다에 닿으리니"라는 이 시는 지금은 힘들고 초라한 처지지만 큰 미래의 꿈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현대에도 누구나 한번 읽어 볼 만한 시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북한산 진관사 쪽을 통해서 북한산을 오르는 등산로도 아름다운 편이니, 등산 중에 돌이켜 봐도 재미 있을 만한 이야기입니다.



* 사극 같은 곳에서 매번 "사면초가"나 "삼고초려" 같은 중국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비슷비슷한 고사성어만 나오는 것이 좀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려시대에 인기 있었던 명언이나 유행어 같은 것을 한번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 오히려 한국사의 유명한 말을 더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 이야기 자체가 참신해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고려시대의 유명한 말인 만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영화, 사극 같은 것에서 주인공들이 옛 역사를 인용하는 대사로 써 먹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천추태후 시기까지만 다뤄 보려고 하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대목 있거나 다른 의견 있으시면 언제고 덧글로 말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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