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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에게 항상 아빠, 아빠라고 가르치네

현종 유모

996년의 일입니다.


성종의 바로 전 임금은 경종으로 성종의 친척 형이었습니다. 바둑 같은 오락에 깊이 빠져 살았다던 경종에게는 정식 왕후만 네 명이 있었습니다.


고려 전기의 임금은 친척끼리 혼인하는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경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경종의 정식 왕후들 중에 헌의왕후, 천추태후, 헌정왕후 셋은 전부 경종의 사촌 뻘이었습니다. 특히 천추태후와 헌정왕후는 친자매 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경종은 자매 둘과 동시에 결혼한 것입니다. 천추태후와 먼저 결혼 했다가 얼마 후 그 언니인 헌정왕후와 또 결혼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친자매가 함께 임금 부인이 된 바로 그 헌정왕후, 천추태후의 남자 형제가 바로 경종 다음의 임금이 되는 성종이었습니다.


방탕하게 지내는 것을 좋아하던 경종은 세상을 떠날 때가 되자 왜인지 차분하고 성실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성격의 성종에게 부드럽게 임금 자리를 넘겨 주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된 것은 천추태후, 헌정왕후와 같이 지내는 동안 부인들과 가까운 친척인 성종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을 기회가 많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권력 다툼에 밝았던 천추태후가 성종에게 “임금님에게 잘 보이려면 이러이러하게 행동해라”라고 열심히 가르쳐 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경종이 방탕하게 살다가 20대 후반에 급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거기에 사실 무슨 음모가 있지 않았나, 하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역사 소설 작가들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경종이 이렇게 20대의 나이에 너무 일찍 세상을 떠버리고 나니, 비슷하거나 더 어린 나이였을 그 부인들이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다 보니 경종의 옛 부인들 중에는 이후에 새로 다른 남자를 만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됩니다. 천추태후는 그 유명한 김치양과 만나서 오랜 애정을 이어나가게 되고, 헌정왕후는 경종의 삼촌 뻘인 왕욱(王郁)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야기는 헌정왕후 쪽에서부터 먼저 시작 됩니다. 헌정왕후는 어느날 이상한 꿈을 꾸고 그 꿈이 무슨 징조인지 꿈풀이꾼에게 풀이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아마 대놓고 자기가 꾼 꿈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요즘 내 주변에서 이런 꿈을 꾸었다는 사람이 있는데, 무슨 뜻인가?”하고 물어 보았을 성 싶습니다. 그런데, 꿈풀이꾼은 이렇게 말합니다.


"꿈 꾼 사람의 자식이 임금이 되어 한 나라를 가질 꿈입니다."


헌정왕후는 그 말을 듣고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경종의 부인이었으니 경종이 살아 있을 때라면 자기 자식이 임금이 되는 것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기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헌정왕후와 경종 사이에 자식은 없었고 그러다 경종은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 버렸습니다. 홀로 된 헌정왕후는 궁전 밖으로 나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무슨 자식이 어디서 생겨난다는 말입니까?


"이미 남편이 세상을 떠났는데 어찌 자식을 낳는다는 말인가?"


헌정왕후는 역시 꿈풀이니, 점이니 하는 것은 미신에 불과하며 믿을 게 못 된다고 생각하며, 헛웃음이나 웃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 헌정왕후는 자기 집 근처에 왕욱이 사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왕욱은 경종 임금의 친척이었으니 헌정왕후가 예전 궁전에서 살 때에도 오며 가며 얼굴을 보았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처음부터 친숙한 인물이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헌정왕후는 왕욱과 더 깊게 친해질 기회가 생겼을 것입니다. 고려의 유명한 축제였던 팔관회, 연등회, 선랑 같은 행사를 헌정왕후와 왕욱이 같이 다니며 가까워졌을 지도 모릅니다.


왕욱은 직접 지은 괜찮은 시가 기록에 남아 있으며, 풍수지리에도 밝았습니다. 현화사비 비문 내용에는 “예, 악, 시, 서”에 뜻을 두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왕욱은 왕자님 답게 멋드러지게 예의를 차리며 멋있어 보이는 행동을 잘 하고, 악기를 연주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일도 잘 하며, 글을 짓고 아름다운 말을 만들어 내고 글씨를 쓰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왕욱은 멋 부리며 즐겁게 노는 방법을 잘 알았을 것이며, 신기한 이야기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헌정왕후는 차차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자 헌정왕후는 결국 왕욱을 자신의 애인으로 삼습니다. 만약 경종이 세상을 뜬 전후의 고려가 정말 무슨 음모와 혼란이 있는 곳이었다면, 나름대로 건실한 사람으로 임금의 친척인 왕욱의 세력이 든든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헌정왕후가 끌어 들인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만, 기록 상으로는 그보다는 그냥 사랑에 깊이 빠졌던 듯 합니다.


왕욱에게는 원래 부인이 있었으며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마 이 무렵 즈음에는 왕욱과 그 부인은 사별한 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헌정왕후와 왕욱은 비밀연애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헌정왕후는 임신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 보니 아무리 비밀연애라고 해도 집안 사람들, 하인들에게는 소문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헌정왕후가 왕욱의 집에 가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날 밤, 갑자기 왕욱의 집에 불이 나는 사건이 생깁니다. 이 사건으로 두 사람 사이는 사달이 나게 됩니다. 불이 나니 밤 중에 허겁지겁 뛰어 나와야 했을 것이고, 그 바람에 헌정왕후가 왕욱과 애인 사이라는 사실이 불구경하러 온 동네 사람들에게 다 알려지게 됩니다. 기록에는 헌정왕후 집안의 누구인가가 헌정왕후와 왕욱의 관계를 싫어해서 일부러 망신을 주려고 불을 피웠다고 합니다.


결국 이 일은 온 세상이 수군거리는 이야기 거리가 됩니다. 지금도 정치인의 연애 스캔들이나 연예인 연애 스캔들은 굉장한 관심거리가 되곤 합니다. TV나 영화가 없던 고려 시대에는 사람들이 떠들고 다닐만한 흥미 거리로 이만한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당시 임금이었던 성종도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제 느낌에 불과합니다만, 훗날 천추태후의 예와 비교해 보자면, 이미 경종이 세상을 뜬 마당에 헌정왕후가 새로운 남자를 만났다는 자체만으로는 아주 엄청난 큰 죄를 저질렀다는 취급을 받았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성종은 그래도 이것을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왕욱을 만나던 밤에 집에 불이 나서 급히 두 사람이 나와 도망치는 바람에 온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 거리가 된 사실이 성종에게는 골치거리였습니다. 임금의 누나가 사람들의 흥미 거리 이야기가 되도록 그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성종은 두 사람을 떼어 놓기로 합니다. 왕욱은 남해안 끝으로 유배를 떠나게 됩니다. 지금의 경남 사천 지역이 왕욱이 가야 할 곳이었습니다.


한편 성종은 헌정왕후를 다시 궁궐로 들어 오게 해서 보화궁이라는 건물에서 살도록 지시 했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좀 더 어둡게 돌아갑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헌정왕후는 화재 사건 때문에 자기 모습이 동네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을 때 "부끄럽고 한스러워 소리내어 울었다(慚恨哭泣)"고 합니다. "고려사"에는 그 후 집에 돌아 오는 길에 헌정왕후가 바로 출산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일이 너무 황급하게 돌아 갔는지 "대문 앞의 버드나무 가지를 붙잡은 채로 아기를 낳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난산이었는지라, 아기는 무사히 태어 났습니다만 헌정왕후는 세상을 뜨게 됩니다.


그렇게 태어난 헌정왕후와 왕욱의 자식은 나중에 일이 이리저리 복잡하게 흘러가는 바람에 결국 정말로 임금이 될 기회를 잡아 고려의 옥좌에 오르게 됩니다. 이 아기가 바로 현종입니다.


그러니 “자식이 임금이 된다”는 헌정왕후의 꿈에 대한 이상한 예언이 결국 맞기는 정확히 맞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자식이 임금이 된다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처럼 헌정왕후가 무슨 큰 영화를 누린다든가, 다시 궁전에서 화려하게 살았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도리어 자식을 낳다가 울적한 상황에서 목숨을 잃어 버릴 뿐이었습니다. 그런 비극입니다.


다만 현화사비에 새겨져 있는 내용은 약간 다릅니다. 현화사비라는 것은 이렇게 태어난 아기가 나중에 정말로 임금이 된 다음에 자신의 어머니 헌정왕후와 아버지 왕욱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입니다. 때문에 현화사비에는 왕욱과 헌정왕후에 대해서 좋은 내용만이 실려 있습니다.


헌정왕후와 왕욱, 둘 사이를 갈라 놓기 위해 성종이 왕욱을 사천으로 귀양 보냈다는 이야기는 현화사비에는 안 나와 있습니다. 대신에 거란과의 전쟁 때문에 피난 차 왕욱이 남쪽으로 내려 갔다는 이야기만 나와 있을 뿐입니다. 헌정왕후가 집 앞에서 현종을 낳았다는 내용도 없고 앓다가 궁전에서 세상을 떴으며, 그때 성종 임금이 무척 슬퍼했다는 내용만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어느 쪽이 사실인지를 떠나서 당시 고려 사람들 사이에서 "헌정왕후에게 애인이 생겼고 그 아이를 낳았는데 대문 앞 버드나무 가지를 붙잡은 채 낳았다더라"하는 풍문이 굉장한 이야기 거리가 되어 열렬히 고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것은 사실인 듯 싶습니다. 이런 일이 잡담 거리, 재미 거리로 사람들 사이에 과다하게 소모되곤 하는 일은 현대에도 있으니 말입니다.


현화사비에 장례 절차가 구체적으로 실린 것으로 볼 때, 헌정왕후의 장례식 때 성종이 무척 슬퍼했다는 묘사는 사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헌정왕후와 왕욱의 사이를 자신이 갈라 놓은 것 때문에 성종이 죄책감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현화사비에는 헌정왕후의 장례식 떄에 성종이 매우 슬퍼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좋은 곳으로 가셨다고들 말은 하지만, 다시는 내 누님의 아름다운 얼굴을 볼 수 없구나."


헌정왕후가 이렇게 낳은 현종은 나중에 고려의 발전에 공을 세운 임금으로 평가 받습니다. 하지만 출생의 비밀 못지 않게 어린 시절에도 고난이 많았고 임금이 된 후에도 갖가지 고생을 많이 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따져 보자면 어느 고려 시대 임금 이상으로 인생살이가 기구한 사람이 바로 현종입니다.


현화사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공공누리1

(현종이 임금이 된 후,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 헌정왕후와 아버지 왕욱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입니다. 사진은 20세기초에 촬영된 것입니다만, 현재도 개성에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종이 아기일 때에도 꼭 일일연속극에 나올 법한 일화가 있었습니다.


현종의 아버지는 귀양살이를 떠나 멀리 남해안으로 가 버렸고,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으니 집안의 하인 누군가가 아기 현종을 보살폈을 것입니다. 아기 현종이 궁전 안에 있는 보화궁에서 그대로 살았다면, 아마 헌정왕후를 따라 온 하인이 유모가 되어 아기 현종을 길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현종의 유모는 꾀가 많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유모는 이 아기를 다시 아버지와 이어주면 나중에라도 출세할 기회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헌정왕후가 세상을 뜨기 전에 유모에게 "그 아기가 나중에 임금이 된다"는 예언이 있었다고 알려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유모는 아기에게 항상 “아빠”라는 말을 하도록 계속 가르칩니다.


그러다 한 번 성종 임금이 아기 현종을 보려고 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아기 현종은 유모가 줄기차게 가르쳤던 대로 선종 앞에서도 “아빠, 아빠”라고 말했습니다.


성종은 효도에 대해 각별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성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책으로는 효도가 중요하다고 많이 읽었지만 정작 자신은 부모를 일찍 잃고 효도할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효도라고 하면 애틋한 감정까지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 현종이 한번도 친아버지를 보지도 못했는데 자신을 보고 “아빠, 아빠”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성종은 굉장히 슬퍼 합니다. 세상을 떠난 누나 헌정왕후에 대한 죄책감이 다시 들었을 지도 모릅니다. "고려사"에서는 아기 현종이 "아빠"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성종이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결국 성종은 아기 현종을 아버지 왕욱과 가까운 곳에서 살게 해 주라고 말 합니다.


그래서 아기 현종은 그때부터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왕욱의 귀양살이도 조금은 편해졌을 것이고, 왕욱이 자기 자식을 어릴적부터 직접 기르면서 여러 가지를 가르쳐 줄 기회도 생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경남 사천에는 어린 현종와 왕욱이 만나던 길이 전설로 내려오고 있기도 합니다. 현종의 유모가 "아빠"라고 말하라고 가르쳤던 그 꾀 떄문에 아기 현종의 인생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면서 옥좌를 향해 서서히 나아가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뒤의 이야기를 보면 왕욱도 헌정왕후의 살아 생전에 그 예언 이야기를 들었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996년이 되어 왕욱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자, 그는 어린 현종에게 자기가 묻힐 묘자리를 알려 줍니다. 풍수지리에 밝았던 왕욱이 자손이 임금이 될 수 있는 명당 묘자리를 찾아낸 것입니다. 그리고 왕욱은 묘자리를 사고 장례식을 치르는 값으로 쓰라면서 숨겨 두었던 황금조각 하나를 어린 현종에게 줍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왕욱은 자기를 묻을 때 자기를 땅바닥을 보도록 엎드린 모양으로 묻어 달라고 유언했습니다. 어린 현종이 그렇게 왕욱을 엎드린 모양으로 묻어 달라고 장례식을 치르면서 말하자, 그 말을 들은 어느 풍수지리꾼이 “어찌 그리 서두르는가”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그러니까, 묘자리가 아주 대단한 명당 자리라서 후대의 인물이 출세할 자리라는 것도 이미 풍수지리꾼의 눈에는 엄청나 보이는데, 거기에서 엎드린 모양으로 시체를 묻는 특수한 수법까지 써서 더 빨리 후대가 출세하는 기술까지 쓰려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저 전설 속의 풍수지리 이야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기왕 예언 이야기도 한 마당에 말을 맞춰 보자면, 그렇게 너무 서두른 덕분에 왕욱의 아들 현종이 바로 임금이 되기는 했지만, 그 대신에 현종의 삶이 평탄하지가 않고 곡절이 많았다는 식으로 말을 지어내 볼 수는 있겠습니다.


왕욱이 헌정왕후의 애인이 되었다가 들켜서 바닷가 마을로 귀양살이 가던 그 때에 남긴 시가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도 유명한 편입이니다. 저에게는 시 중에서 다음 두 구절이 특히 괜찮아 보입니다.


제성춘색 혼교몽 (帝城春色魂交夢) - 도시의 봄 현란한 빛은 꿈속에서나 아른거릴까

해국풍광 누만의 (海國風光淚滿衣) - 바닷가 바람 경치를 보니 눈물로 옷을 적시네


요약하자면 "꿈 속의 제성춘색, 눈물의 해국풍광"라는 말입니다.


“제성춘색”은 중국 당나라의 시에도 가끔 보이던 말인데, “제성”이라는 말은 임금이 있는 수도를 뜻하는 말로 화려한 대도시라는 느낌을 내려고 쓴 말입니다. “춘색”은 직역하면 봄 빛인데, 아름답고 밝게 피어나는 현란한 도시의 모습을 상징하기에도 적당한 말로 느껴집니다. 게다가 떠나기가 싫었던 그리운 대도시의 모습과 귀양 살이를 해야 하는 머나먼 바닷가 지역의 모습을 대조하면서, “제성”과 “해국”, “봄의 현란한 빛”과 “바람 경치”, 글자 하나하나를 대조시키고 있어서 시가 더 그럴듯해 보입니다.


읽어 볼 수록, 왕욱이 도시를 떠나며 그리움을 읊은 "꿈 속의 제성춘색, 눈물의 해국풍광"은 제법 괜찮은 글 솜씨, 말 솜씨 같습니다. 헌정왕후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도 그런 재주였던 것인가, 모르겠습니다.



* 사극 같은 곳에서 매번 "사면초가"나 "삼고초려" 같은 중국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비슷비슷한 고사성어만 나오는 것이 좀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려시대에 인기 있었던 명언이나 유행어 같은 것을 한번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 오히려 한국사의 유명한 말을 더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 이야기 자체가 참신해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고려시대의 유명한 말인 만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영화, 사극 같은 것에서 주인공들이 옛 역사를 인용하는 대사로 써 먹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천추태후 시기까지만 다뤄 보려고 하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대목 있거나 다른 의견 있으시면 언제고 덧글로 말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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