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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원차 / 중형주대

최량

995년의 일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차를 마시는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불교에 차를 마시는 풍습이 있으니, 신라 시대에도 차를 마시는 문화가 어느 정도 있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고려 시대가 되어 농업도 더 발달하고 외국에서 새로운 차를 들여 오는 것도 많아지다 보니 좋은 차를 마시고 즐기는 문화가 많은 사람들 사이에 더욱 널리 퍼지게 됩니다. 마치 요즘 몇 십 년 사이에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굉장히 많은 양의 커피를 소비하는 나라가 된 것처럼, 고려 시대의 사람들 사이에도 차 그러니까 녹차 마시는 유행이 빠르게 퍼져 나갔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차를 마실 수 있는 "다점(茶店)"이 있어서 지금의 커피 가게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고려사절요"에서 후대 천추태후 시기의 기록을 보면 보면 나라에서 일부러 다점을 많이 퍼뜨리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상업을 발전시키고 엽전을 활발히 유통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고려 시대의 다점은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들러서 차도 사마시고 간단한 과일이나 과자도 사 먹을 수 있는 곳이었던 듯 합니다.


고려 시대 작가 임춘의 시에는 다점에서 차를 마시다가 낮잠이 설핏 들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고려 시대의 다점은 느긋하게 쉬기 좋은 곳이었고 자리도 무척 편안했던 것 같습니다. 시의 첫 머리가 "頹然臥榻便忘形 (퇴연와탑편망형)"으로 시작되는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의 다점 의자는 "탑(榻)" 곧 평상 형태였던 것 같은데 눕기 좋을 만큼 아늑하거나 푹신하게 되어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사람들 사이에 차 마시는 풍습이 이렇게 많이 퍼져 있었으니, 당연히 궁전 안에도 차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고려사"의 "예지" 부분을 보면 온갖 궁중 의식에서 차를 올리고 차를 마시는 순서가 들어 가 있는 것들이 무척 많습니다. 얼마나 궁전 안에서 차 마시는 것을 즐겼는지, 최승로가 "시무28조"에서 성종 임금에게 아무리 차를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더라도 임금이 "직접 차를 자기 손으로 가는 것"을 좋아하며 힘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이 시기의 부유한 사람들은 좋은 차를 아름다운 찻잔에 담아 느긋하게 즐기는 여유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러니까 임금님들도 차 마시는 시간, 차를 우려내는 시간을 좋아 하면서 바리스타 일을 하는 것을 즐겼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궁전 안에 차에 대한 일을 담당하는 "다방(茶坊)"이라는 부서가 별도로 있었고, 무슨 영국 군대도 아닌데 군사들 중에도 행차 할 때 "다담(茶擔)"이라는 이름으로 차에 대한 일을 담당하는 군사들이 따로 배정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고려 조정의 여러 차 마시는 풍습 중에 제가 특별히 관심이 가는 것은 "중형주대(重刑奏對)" 의식과 "차시(茶時)" 입니다.


"중형주대"는 사형과 같은 무거운 형벌을 내릴 때에 그에 대해 마지막으로 임금님께 확인해 달라고 관리들이 아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고려사"를 보면 고려의 중형주대에는 특정한 의식이 있어서, 반드시 마지막으로 같이 차를 한 잔씩 마시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남의 인생이 달린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에는 서두르며 급하게 대충 넘기지 말고 반드시 조금이라도 차분한 시간을 가지면서 결정하기 위한 순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뜨거운 차를 시간을 두고 같이 마시면서, 정말로 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도 되는가, 이렇게 무거운 형벌을 내려도 되는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새로운 시각으로 생각해 보자는 의미였을 겁니다. 이런 것은 현재 대한민국 대법원에서 대법관 한 명 당 1년에 3800건의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는 점과 대조를 이루는 느낌입니다.


그러고 보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처형 당할 위기에 놓였던 사람이 정말 중형주대 때 마지막으로 차 한 잔 마시는 동안 아주 사소한 단서가 눈에 뜨이는 바람에 다시 재판을 받을 기회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꾸며 봐도 재미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실제로 고려 시대 전기의 기록을 보면 무거운 형벌을 관대하게 조금 덜어 주었다는 기록이 종종 보입니다. 물론 광종 임금 시기는 예외로 상관 없습니다.


"차시"는 직역하면 "tea time"이 됩니다. 말 그대로 조정 관리들이 하루에 한 번 정도 같이 여유를 갖고 차를 마시는 시간을 정해 놓은 것입니다. 역시 주로 다른 사람에게 벌을 내리는 일을 하는 현재의 사법부에 해당하는 부서 관리들 사이에 이런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과연 이런 벌을 내리는 것이 맞는가? 억울하게 벌을 받는 사람은 없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차를 마시면서 좀 새로운 생각을 환기하는 시간으로 출발한 것 아니었나 싶습니다.


같은 부서에 소속된 관리들끼리 차시는 자기들간의 결속을 다지는 시간이 되기도 했을 겁니다. 차시는 고려 시대 보다도 조선 전기에 더 끈끈히 이어져서 주로 사헌부의 풍습으로 서거정의 “사가문집”등의 조선 시대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한편 고려 시대의 가장 유명한 유물이라면 거의 누구나 청자 도자기를 꼽습니다. 그러므로 찻잔이나 주전자, 또는 차를 가는 멧돌 같은 것들에도 차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관심을 많이 가졌습니다. 좋은 찻잔을 사 모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규보 등의 작가가 남긴 시를 보면 좋은 차 주전자 같은 것을 선물로 주고 받으면 기뻐하는 풍속도 퍼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워낙 차 마시는 풍습이 성행하다 보니 차의 맛을 따지고 감별하거나, 차를 끓이는 물맛을 따지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포도주 소믈리에 같은 일을 즐기는 차 마시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는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 걸쳐 활동했던 이행(李行)이 있습니다. 조선 초기의 기록인 "용재총화"에 따르면 이행은 차를 아주 좋아해서 물 맛을 세밀히 따질 수 있었는데 전국의 다양한 물맛을 따져 보고 "첫째는 충주의 달천수(達川水), 두 번째는 한강의 우중수(牛重水), 세 번째가 속리산의 삼타수(三陀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청자 죽순 모양 주전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공공누리1


고려 시대 차 맛은 어땠을까요? 중국 송나라의 사신으로 고려에 방문했다가 고려의 풍습에 대한 "고려도경"이라는 책을 남긴 서긍의 기록에 따르면 고려의 차 맛은 쓴 편이라서 자기 입맛에는 도통 안 맞았다고 합니다.


고려 시대, 고려의 차 종류로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 뇌원차(腦原茶): 임금이 신하들이나 외국에게 선물했다는 기록에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가장 좋게 쳐 주던 차로 보입니다. 고려의 특산품처럼 보이는 기록이 많습니다.

- 대차(大茶): 역시 임금이 신하들에게 선물했다는 기록에 나오는 좋은 차입니다. 상등품을 일컫는 말인 듯 하며, 잎이 커다란 차를 일컫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막연한 짐작입니다만, "대차"가 있었다면 "중차", "소차"도 있었을 듯 합니다.

- 조아차(早芽茶): 고려의 작가 이규보가 잎이 돋아난지 얼마 되지 않은 차 잎으로 만든 차를 부르던 말입니다. 흔히 요즘 작설차라고 하던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진각국사 혜심의 시에 "작설"이라는 말이 나오므로 고려 시대에 "작설차"라는 말도 그대로 썼을 겁니다.

- 향차(香茶): 좋은 차, 향기로운 차를 뜻하는 말로 볼 수 있겠습니다. 혹은 독특한 향이 있는 차를 말할 때도 있었을 겁니다. 한편 중국 원나라의 "음선정요"라는 책에는 향차 만드는 법을 말하면서 몇 가지 재료를 버무려 만들었다는 언급이 있는데, 그런 것을 보면 향차 중에서는 이렇게 독특하게 여러 재료를 어떤 비율대로 섞어서 제조하는 것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 몽산제일적(蒙山第一摘): 이규보가 자신의 시에서 쓴 말로 몽산에서 이른 계절에 맨처음으로 딴 차를 말합니다. 여기에서 몽산은 지금의 전라북도 남원에 속하는 운봉의 산지 지역을 말하는데, 중국의 몽산이 차로 유명하기 때문에 별명을 붙여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이규보의 시를 읽다 보면 유독 추운 겨울이 지나고 눈이 막 녹을 때 겨우 열린 차 잎을 따서 만든 차를 좋은 차로 치는 경우가 눈에 뜨입니다. "몽산제1적"이라는 말이 있는 만큼, 다른 유명한 차 밭이 있는 곳에서도 "어느어느 동네 제1적"이라는 식으로 말을 꾸며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수입차 역시 유통되어 여러 품종을 따지며 거래되었던 기록이 있습니다.


한 가지 수수께끼 같은 점은 고려 시대의 고유한 차이면서 아마도 최상품의 차 같지 않은가 싶은 "뇌원차"가 도대체 무엇인지 지금 우리는 그 정체를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고려사절요"의 기록을 보면, 성종 임금이 최승로, 서희 같은 가장 명망 높은 신하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안타까움의 의미로 뇌원차 200각(角)과 대차 10 근, 그러니까 4~5kg 정도를 하사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뇌원차가 가장 먼저 언급되고 있으니 제가 보기에는 상당히 귀하고 중요한 물품이었다고 추측합니다.


특히 995년에 최량이라는 신하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성종이 뇌원차 1000각을 하사했습니다.


최량은 광종 시기에 과거 시험으로 관리가 된 경주 출신 인물입니다. 그러니 최승로와 비슷하게 묶일 수 있으면서 그 후배라고 할만한 사람 아닌가 합니다. 최량은 성종이 어릴 때 "사우(師友)"라고 하여 친구와 스승 역할을 동시에 해 줄 수 있는 역할에 임명 되었습니다. 그러니 연배는 성종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최량은 글짓는데 뛰어 났으며 특히 인자한 성품으로 이름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성격도 성종과 잘 맞았는지, 최량은 성종과 마음이 잘 통한 친구 같은 신하가 된 듯 합니다.


최량은 그후 신하로서도 꾸준히 여러 일을 맡아 했습니다. 993년에 거란과 전쟁이 터졌을 때에 하군사 역할을 맡아 전장으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최량이 세상을 떠났을 때 뇌원차 1000각을 받았다는 것은 고려 역사에서 뇌원차를 임금에게 받았다는 기록 중에는 아마 가장 많이 받은 사례 같습니다. 거란과의 전쟁 후유증 때문에 "대차"를 조달하기가 어려워서 뇌원차만 준 것 같기도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살아 생전 친구인 최량이 워낙 뇌원차를 좋아하는 것을 성종이 기억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많은 양을 준 것 아닌가, 하는 상상도 저는 해 봅니다.


서희가 받은 "뇌원차 200각 대차 10근"이라는 기록에서 뇌원차와 대차가 비슷한 정도라고 가정하면, 뇌원차 1각은 0.05근 정도라는 뜻이 됩니다. 20~30 그램 정도인데, 뇌원차에 대해 굳이 무게 단위를 쓰지 않고 "각"이라는 특이한 단위를 쓴 것을 보면, 20~30 그램 정도를 뭉쳐 놓은 덩어리 같은 것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독특한 맛과 향이 나도록 몇 가지 재료를 떡처럼 뭉쳐서 만들어 놓은 형태의 차가 "뇌원차"인데 한 덩어리를 부를 때 1각이라는 특수한 단위를 썼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설명은 그저 추측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라남도 어디인가에 "뇌원"이라는 마을이 있어서 그곳에서 생산되는 차를 뇌원차라고 불렀다고 짐작하기도 하고, "뇌" "원" 등의 말과 관계 있는 어떤 독특한 약재를 차에 가미했기 때문에 뇌원차라고 불렀다고 추정하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설이 돌고 있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온갖 커피와 차를 파는 가게가 세계적으로 굉장히 많은 편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지구 반대편에서 생산된 차라도 요즘은 인터넷으로 배달해서 맛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옛날 한국의 궁전에서 가장 좋아했다는 그 뇌원차의 맛은 지금 우리가 알아낼 길이 없게 되었습니다. 돈만 있다면 고려 시대에 사용하던 고려 청자 찻잔을 사는 것은 여전히 가능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 찻잔에 담아 마셨던 뇌원차는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누구도 다시 그 맛을 볼 수 없으며, 심지어 어떤 맛인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혹시 뇌원차를 1천각이나 받았다고 하는 최량의 후손 중에 뇌원차의 흔적, 먼지 부스러기라도 갖고 있는 분이 계실 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고려 시대 유적을 발굴하다가 우연히 흙부스러기 같은 것을 잘 감싸놓은 쌈지가 발견 되었는데 그 DNA를 분석해 보았더니, 독특한 차 품종인 것처럼 보이더라 하는 기막힌 일이 생길 가능성은 얼마나 될 지 한번 상상해 보기도 합니다.



* 사극 같은 곳에서 매번 "사면초가"나 "삼고초려" 같은 중국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비슷비슷한 고사성어만 나오는 것이 좀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려시대에 인기 있었던 명언이나 유행어 같은 것을 한번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 오히려 한국사의 유명한 말을 더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 이야기 자체가 참신해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고려시대의 유명한 말인 만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영화, 사극 같은 것에서 주인공들이 옛 역사를 인용하는 대사로 써 먹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천추태후 시기까지만 다뤄 보려고 하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대목 있거나 다른 의견 있으시면 언제고 덧글로 말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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