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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육주

서희

993년의 일입니다.


계사지역(癸巳之役), 즉 "거란의 1차 침입" 전쟁 이야기에는 기이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전쟁 이야기인데도 다들 결정적인 장면으로 언급하는 것은 살벌한 전투나 놀라운 무기 같은 대목이 아닙니다. 전쟁에 대해 돌아 보면서도 싸움 그 자체 보다, 고려의 서희와 거란의 소손녕이 어떻게 만나서 협상을 했는 지, 그 협상 과정과 담판을 가장 중요한 이야기 거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순간이 있다는 것도 고려 시대 이야기의 특이하고 흥미진진한 대목입니다.


서희와 소손녕은 일단 만나자 마자 기싸움을 했습니다. 소손녕은 자신은 큰 나라의 대신이니 자기 보다 서희가 더 낮은 곳에 서서 자신에게 인사를 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서희는 신하 대 신하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 서로 같은 높이에 서서 인사를 하는 것이 맞다고 맞섭니다.


사실 땅을 떼어 주더라도 빨리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하던 겁 먹은 고려 조정의 입장을 생각하면 서희는 어떻게든 소손녕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협상을 이어 나가는 것이 맞을 겁니다. 그렇지만, 서희는 역사에 길이 남은 포커 페이스이었습니다. 서희는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나가기 위해 시치미를 뚝 떼고 "마음에 안 들면 나는 협상을 다 때려 치우겠다, 꼭 이 협상 안 해도 된다, 아쉬울 것 없다"는 태도를 꾸며낸 것입니다. 모르긴 해도, 서희는 자신이 고려에서 굉장히 벼슬이 높고 유력하며 권위가 높은 사람이라는 듯이 옷차림에서 표정까지 많은 것을 신경 쓰기도 했을 겁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시치미를 뗀다"라는 말은 고려 후기에 몽골의 영향으로 매사냥이 성행하면서 "매사냥할 때 쓰는 매에 붙은 꼬리표를 뗀다"라는 뜻이라고들 이야기 합니다. 그러니 아직 서희의 시기에는 시치미를 뚝 뗄 때에도 시치미를 뗀다는 표현조차 쓰지 않았을 겁니다.


서희는 기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수가 틀리는 것 같으니까 자기 숙소로 들어가 드러누워버렸습니다. 어떤 식의 행동인지 한국인으로서는 쉽게 공감되는 느낌이 있는 듯 합니다. 결국 서희의 그런 방식이 소손녕에게 먹혔습니다. 둘은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인사하고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니다. 지금껏 회자되고 있는 서희의 포커페이스가 역사에 남기 시작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협상이 시작 되자, 두 사람은 이 담판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소손녕이 먼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꺼냅니다.


"거란은 고구려의 영토에서 출발한 나라이고 대체로 고구려 지역을 다스리고 있으니 고구려의 옛 땅은 우리가 차지하는 것이 맞다. 고려는 신라 영토에서 출발한 나라이고 대체로 신라의 영토를 다스리고 있으니 신라의 옛 땅을 차지하는 것이 맞다. 그러니 지금 고려의 북쪽 지역을 거란 것으로 확실히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서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지 않다. 우리 고려가 바로 고구려의 구(高勾麗之舊)이다. 나라 이름 자체가 고려이다. 그리고 고구려의 도읍인 평양을 고려의 도읍으로 삼았다."


우리가 편의상 고구려를 고구려라고 부르지만, 고구려 역사 후반에는 고구려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나라를 이미 그때부터 "고려"라고 자주 불렀다는 흔적이 몇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려라는 나라 이름은 사실 그냥 고구려 사람들이 쓰던 나라 이름을 그대로 이어 받아 쓰는 것이었습니다. 고려의 뿌리가 되는 궁예 역시 나라를 건국하면서 이미 "내가 고구려의 원수를 갚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족히 수 만 명 이상의 군사를 동원해서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으며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 이런 살벌한 상황에서 사실 나라 이름이 비슷하든 같든 그 정도가 무슨 그렇게 결정적인 관련이 있겠습니까? 서희가 "고구려랑 고려랑 나라 이름이 같잖아."라고 해서 소손녕이 "아, 정말! 나라이름이 똑같다니, 절대 반박할 수 없는 설명이고, 우리 병사들이 목숨도 많이 잃었지만 무조건 따라야 되는 설명이네"라고 했을 리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보다, 이때 당시 서희의 나이가 51세였습니다. 전형적인 아저씨라고 할만한 연배입니다. 소손녕의 나이는 명확하지 않지만 대략 30 전후로 당시의 기준으로는 아저씨라고 불리우는 나이로 충분히 진입한 단계였을 거라고 봅니다.


때문에 저는 "고려가 고구려와 나라 이름이 같잖아"라는 말은 본격적인 협상을 하기전에 일종의 아재 개그를 서로 나눈 것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서희는 이 뒤에 "우리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해서, 그렇다고 그 이유 하나 만으로 지금 거란의 수도가 옛날에 고구려 땅이었으니 이제 거란의 수도도 우리한테 넘기라고 하면 말이 되겠소?"라는 어이 없는 농담 같은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그러니 정말로 전체가 농담까지는 아니라도 큰 의미 없이 대체로 눈치를 보며 적당히 분위기를 다투는 말 정도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서희는 그 분위기 싸움에서도 지지 않았으며,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다"라는 점을 고려 사람들이 마음에 품고 있다고 아주 분명히 밝혔고 외국에도 그렇게 똑똑히 전했으며 이러한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고구려와 고려가 나라 이름이 같잖아"라는 이 한 마디는 갈 수록 역사에서는 더 중요해졌습니다.


협상에서 더욱 핵심이 되는 사항은 그 다음으로 소손녕이 꺼낸 이야기였습니다.


"고려는 거란과 가까이에서 살고 있는 나라인데, 그러면서 왜 고려는 거란과 교류가 없는가? 게다가 거란과 싸우곤 하는 바다 건너 송나라를 어찌 고려는 높은 나라로 우대하고 있는가?"


이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소손녕이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바로 거란과 중국 송나라가 대결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란의 동남쪽에 있는 고려가 송나라의 동맹으로 거란의 위협거리가 되어 뒤통수를 치면 곤란하니, 고려가 중국 송나라와 한 편이 되는 것을 중단시키고 대신 고려를 거란에게 충성하게 만들고 싶기 떄문이었습니다.


즉 소손녕이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송나라와 고려가 손을 잡고 거란을 공격하려는 모양 아니냐, 그것은 두고 볼 수 없으니 거란 편이 되어라"라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서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고려가 거란과 통하지 못하는 것은 그 길 사이에 사악한 여진 사람들이 있어서 너무 다니기가 어렵기 때문일 뿐이다. 거란 황제 폐하의 귀(天聰)에 그런 이야기가 전해지게 된다면 분명히 이해하실 것이다."


서희는 고려와 거란의 관계가 친하지 않은 것을 모두 다 여진 탓으로 돌린 것입니다.


사실 이 전쟁만 놓고 보면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여진 사람들이 거란이 쳐들어 온다는 기미를 미리 알려 주는 등, 여진 사람들은 도리어 고려에 도움이 된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서희는 소손녕에게 여진 사람들이 고려에게도 굉장히 골치거리라는 식으로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 시기 거란은 여진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일이 많았고, 여진 사람들은 거란이 여진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이 많아서 거란에 반발하는 때가 있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거란과 여진 사람들은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서희는 그 점을 파고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두 사람이 같은 사람 험담을 서로 나누다 보면 빨리 친해지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고려와 거란 두 나라, 공동의 적이 바로 여진이라고 지목하면서 여진이 정말로 나쁘다고 그쪽으로 이야기를 돌려 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소손녕의 생각을 움직이게 한 것입니다.


한편으로 서희는 무작정 마음에 안 들면 드러눕고, 고려가 강하다는 식으로 고자세만 취한 것은 아닙니다. 서희는 "고려가 고구려의 후예이니 거란의 수도도 고구려의 옛 땅이다" 같은 위험한 농담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엄청난 이야기를 하면서도, 필요할 때에는 거란을 깍듯이 위대한 나라라는 식으로 공손한 말을 사용해 추켜 올려 주었습니다. 거란을 "상국(上國)"이라고 불러서 거란이 고려 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나라라는 말을 쓰기도 했고, 거란의 임금에게 말을 전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에는 거란의 임금이 말을 듣는 다는 것을 "천총(天聰)" 즉 하늘의 총명함이 듣는다고 표현해서 극히 높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식으로 살살 거란 사람들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결국 서희의 협상은 성공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려 조정은 땅을 떼어 주면서 빌고 빌어서라도 전쟁을 빨리 끝내기만 하면 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려 역사상 최고의 배짱을 가진 서희는 어찌나 협상을 잘했는지 도리어 압록강 동쪽의 땅 여섯 군데, 즉 "강동6주(江東六州)"를 받아 오는 것으로 담판이 이루어졌니다.


그렇게 해서 고려와 거란이 서로 잘 통할 수 있는 길목의 성과 요새들을 잘 갖춘 뒤에 고려와 거란이 교류하고 고려에서는 거란에게 깍듯한 예의를 표시하는 사절단을 보낸다는 결론으로 전쟁을 끝내게 됩니다.


옛 장화홍련전 표지.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 공공누리1

(강동6주 중 한 곳이 "철주"라는 곳입니다. 서희의 강동6주 확보 이후로 이곳 철주는 고려, 조선의 도시로 두고두고 자리잡았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철주를 철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잘 알려진 소설 장화홍련전의 무대가 바로 철산입니다.)


조선시대 철산읍지 지도. 출처 규장각지리지종합정보.

(이곳 근처가 강동6주입니다.)


고려 조정 사람들은 대단히 기뻐하였습니다. 성종은 서희가 협상을 하러 떠날 때 전송했던대로, 서희가 담판에 성공하고 돌아올 때에도 강가까지 직접 가서 돌아오는 서희를 환영하며 맞아 주었습니다. 성종의 눈에 서희가 얼마나 의지할만한 멋진 신하로 보였겠습니까?


강동6주는 여진 사람들이 많이 살던 곳이자 거란과 맞닿는 지역이었습니다. 만약 전쟁 전의 상황 그대로였다면 이 지역을 고려가 완전히 장악할 경우, "고려가 거란을 공격하려고 위협하는 것이냐"면서 거란이 반발할 위험이 큰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쟁 중의 협상을 거쳐서 이 지역을 고려가 완전히 장악해도 된다고 거란이 고려에게 합의해 주게 만든 것입니다.


즉, 강동6주란 굉장히 불리한 협상 상황에서도 의외로 얻어낸 한 가지 좋은 결과인 셈입니다. 



* 사극 같은 곳에서 매번 "사면초가"나 "삼고초려" 같은 중국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비슷비슷한 고사성어만 나오는 것이 좀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려시대에 인기 있었던 명언이나 유행어 같은 것을 한번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 오히려 한국사의 유명한 말을 더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 이야기 자체가 참신해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고려시대의 유명한 말인 만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영화, 사극 같은 것에서 주인공들이 옛 역사를 인용하는 대사로 써 먹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천추태후 시기까지만 다뤄 보려고 하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대목 있거나 다른 의견 있으시면 언제고 덧글로 말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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