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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공업이 집안 일 때문에 하루 아침에 망하는구나

박영규

936년의 일입니다.


후백제의 임금 견훤은 군사적 재능으로는 대단히 출중했던 인물입니다. 아마도 전략과 전술로는 왕건을 압도했던 것 같은데, 그런데도 결국 후백제는 고려에 패배했습니다. 견훤은 그런 상황이 너무 이상해서 본인 스스로도 "군사들 싸우는 것을 보면 우리가 항상 이기는데 어떻게 세월이 지날 수록 고려가 더 강성해지는가?"라고 부하들에게 탄식하듯이 질문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사실 후백제가 무너진 결정적인 원인은 견훤이 지나치게 뛰어난 인물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견훤에 비해서는 재주가 부족했던 그의 아들들은 자기도 견훤처럼 될 거라는 생각으로 서로 다툽니다. 견훤이 셋째 아들 금강을 후계자로 삼는다고 생각하자, 견훤의 첫째 아들 신검은 반란을 일으켜 후백제의 건국자이자 자신의 아버지인 견훤을 지금의 전북 김제에 있는 금산사에 가두어버렸습니다. 전쟁터에서 전략과 전술로는 아무도 당할 수 없는 군인이었던 견훤이 터무니 없게 집안 문제로 자기 자식에게 무너져버린 셈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견훤은 석 달만에 금산사를 탈출합니다. 탈출 후 견훤은 아들조차 자신을 배반한 상황에서 온 나라에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고민 끝에 견훤은 이제껏 전쟁터에서 적으로 계속 만났던 고려의 왕건을 찾아 가서 도와 달라고 합니다. 후삼국시대의 그 긴긴 싸움 이야기의 대단원으로 손색이 없는 충격적이고 극적인 반전이라고 하겠습니다.


견훤은 왕건에게 자신을 배반한 첫째 아들을 공격해 달라고 합니다. 아들을 벌하기 위해 평생 다투었던 숙적에게 부탁하는 상황이라니, 한국사에 이렇게 기구한 팔자의 임금도 또 없을 것입니다.


한편 후백제에는 박영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박영규는 지금의 전남 순천인 승주 사람인데, 견훤의 딸, 그러니까 후백제의 공주와 결혼해 장군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습니다. 박영규는 공주와 의논했습니다.


먼저 박영규는 견훤의 처지에 대해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40년이 넘도록 부지런히 애쓰셨던 공업이 이제 거의 이루어질 무렵이었는데 하루 아침에 집안 사람의 화를 입는 바람에(一旦以家人之禍 일단이가인지화) 무너져 나라를 잃으셨습니다."


뒤이어 박영규가 공주에게 제안했습니다.


"지금 장인 어른께서 고려 임금에게 도망치셨는데, 저도 장인 어른을 모시던 충신으로서 어찌 역적들에게 붙겠습니까? 우리도 장인 어른 편을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주는 박영규의 의견에 찬성했습니다.


"당신의 말이 내 뜻과 같소. 고려의 왕건은 너그럽고 마음이 두텁다고 하니 우리가 말하면 들어 줄거요."


셋째 아들과 첫째 아들이 임금 자리를 놓고 그렇게 다툰 것을 보면, 애초에 견훤의 자식들은 서로 사이가 나빴는지도 모르며 공주 역시 첫째 아들 신검을 원래 싫어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박영규는 왕건에게 연락하여 만약에 견훤과 함께 후백제를 공격해 오면, 자기가 고려군의 앞잡이가 되어서 후백제 내에서 맞장구를 쳐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그러자, 왕건은 너무나 기뻐하여 박영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나는 바로 장군을 만나 인사할 것이며, 또한 마루에 올라가 공주께 절을 올릴 것이오. 그리하여 장군을 형님처럼 섬길 것이고, 공주를 누님처럼 떠받들 것이오."


지금 보면, 누가 자기 편이 된다는 것이 너무 기뻐서 거의 체통을 잃을 정도로 뭐든지 다 해주면서 높이 모시겠다고 촐싹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앞서서 견훤이 왕건에게 도망쳐 왔을 때, 왕건은 견훤을 아버지처럼 대접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왕건은 평생의 숙적이 아들에게 배신당해서 자신에게 왔지만 견훤을 놀리거나 비웃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진정으로 자기편이 될 수 있도록 가능한한 명예롭게 대해 준 것입니다. 견훤이 찾아 왔을 때 왕건은 가능한한 예의를 표하기 위해 가장 믿음직한 부하인 유금필을 보내어 견훤을 맞이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친척인 왕만세를 같이 보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 줘야, 배반과 살육으로 들끓었던 후삼국시대 사람들에게 "왕건은 믿을만하고 착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 견훤이 아버지 뻘이라면, 그 딸과 사위인 공주와 박영규는 왕건에게 형제자매 뻘이 된다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나이로 따져 보자면 왕건이 박영규보다 더 나이가 많습니다만 기왕 듣기 좋은 말 하는 김에 형님으로 섬길거라고 한 듯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박영규는 고려군과 결탁하기로 합니다.


견훤을 장인 어른으로 모시면서 성공했던 박영규는 고려편이 된 후에는 나중에 자기 스스로 왕건의 장인 어른이 되기도 합니다. 즉 박영규가 자기 딸을 왕건과 결혼시킨 것입니다. 심지어 나중에는 자기의 다른 딸을 왕건의 아들과 결혼하게 해서, 동시에 두 임금의 장인 어른이 되기도 합니다. 즉 박영규의 장인 어른이 후백제의 견훤이고, 박영규는 고려 태조의 장인 어른이며, 동시에 고려 정종의 장인 어른이 되었습니다.


박영규가 고려 편이 되기로 하고 얼마가 지난 936년 음력 9월, 고려군과 후백제군의 마지막 전투인 일리천 전투가 벌어집니다. 고려군은 10만명에 가까운 병력을 동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려군 편에 후백제를 건국한 장본인인 견훤 본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박영규는 드디어 오랫 동안 그리워하던 장인 어른을 만났을 것입니다. 후백제군도 나름대로 많은 병력을 동원해 모든 것을 걸고 맞서 싸웠습니다만, 이기기는 힘들었습니다.


결국 참으로 오래간만에 다시 후삼국은 통일되었습니다.



* 사극 같은 곳에서 매번 "사면초가"나 "삼고초려" 같은 중국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비슷비슷한 고사성어만 나오는 것이 좀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려시대에 인기 있었던 명언이나 유행어 같은 것을 한번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 오히려 한국사의 유명한 말을 더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 이야기 자체가 참신해 보이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고려시대의 유명한 말인 만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영화, 사극 같은 것에서 주인공들이 옛 역사를 인용하는 대사로 써 먹어도 좋을 겁니다. 일단 33편 정도만 소개해 보려고 하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거나 다른 의견 있으시면 언제고 덧글로 말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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