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개의 포스트

친히 듣는 것이 적으면 여러 마음 헤아리기가 두렵다
광종

963년의 일입니다. 의심 나는 사람이면 가차 없이 감옥에 가두던 이 시기의 광종은 무슨 생각인지 궁전 바깥에 나가서 살고 있었습니다. 왕육이라는 자신의 친척인 신하 집에 머물렀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원래 살던 궁전은 수리하고 고쳐 짓도록 했습니다. 광종은 그렇게 거의 2년 정도를 궁전 바깥에서 지냈습니다. 아마 제법 궁...

천한 사람들, 묶여 있었던 자들이 뜻을 얻는다
대목왕후

960년의 일입니다. 조정에서 사람을 뽑는 방식을 뿌리부터 바꾸는 과거 시험이라는 제도를 실시하는데 광종은 성공했습니다. 광종은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거침 없이 다른 일도 벌였습니다. 먼저 손을 댄 일은 956년에 시작한 "안검노비(按檢奴婢)"였습니다. 요즘에는 흔히 노비안검법이라고도 하고 조선시대 역사 ...

재상 자리까지 오르는데 사계절도 걸리지 않으니
쌍기

956년의 일입니다.950년에 임금이 된 광종은 대략 7년 동안 조용히 세상을 뒤엎을 준비를 했습니다. 어떻게 세상을 엎을지 책을 읽으며 궁리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미한 가문에서 자라나 별 세력은 없지만 자신에게만 충성할 신하들을 틈틈히 뽑고, 세금을 걷고 물자를 관리하는 제도를 고쳐서 재물을 모았습니다.그리고 956년...

신하가 금그릇을 쓰면 임금은 무엇을 써야 합니까
서필

950년이 좀 지난 무렵의 일입니다. 고려의 네 번째 임금 광종은 자신의 형인 혜종, 정종이 임금이었던 시절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형은 임금이면서도 임금의 자리를 노리는 신하들에게 암살 위협을 당하다가 비참하게 병들어 갔습니다. 임금이라는 사람이 궁전에서 혹시 누가 자기를 노릴까봐 항상 겁에 질린 모습으로...

임금님이 돌아가셨는데 일꾼들은 뛰면서 기뻐하네
정종

949년의 일입니다. 옛날 신라 시대에는 임금과 왕비의 자식을 왕자나 왕녀라고 부르고 그 중에서 임금의 후계자를 정하면 그 왕자만을 특별히 "태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고려 초기에는 임금과 왕비 사이의 아들을 모두 다 "태자"라고 부르고 후계자는 따로 "정윤"이라고 불렀습니다. 중국 당나라, 송나라에서 임금의 자식을 ...

광학보 / 봄비가 며칠이나 내린들 그대 잡았던 손의 향기가 씻기랴
정종

946년의 일입니다. 혜종이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세상을 뜨자, 혜종의 아들이 있었지만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혜종의 아우인 정종이 뒤이어 임금이 되었습니다. 정종의 어머니와 외가는 세력이 강한 명문이었습니다. 앞선 인금인 혜종에게 계속 어머니가 미천한 가문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따라다녔던 것과는 완벽히 대조를 이룹니다. 그...

주름살 임금님
혜종

945년 무렵의 일입니다. 왕건의 부인 장화왕후는 자황포를 보여 주면서 박술희 장군에게 자신의 아들을 지켜달라고 부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건의 장남이었던 그 아들이 자라나서 바로 고려의 두번째 임금 혜종이 됩니다. 장화왕후가 걱정했던 대로 장화왕후의 집안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그 아들인 혜종까지 얕보는 사람들은 ...

덧없는 인생이란, 예로부터 그러한 것이니라
왕건

943년의 일입니다. 그해 음력 4월 초여름이었습니다. 후삼국이 통일되고 평화가 찾아 온 지도 7년 정도가 흘렀습니다. 통일된 고려의 임금이었던 왕건은 60대 중반이었습니다. 그 무렵 왕건은 몸상태가 좀 이상해졌다는 것을 느낀 듯 합니다. 왕건은 이제 자신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직감했을 것입니다. 왕건은 그 전에...

제왕의 다섯 가지 덕목
최원

936년의 일입니다. 이 무렵의 이야기에 대해서 언급하는 기록 중에 고려 고종 때인 1254년에 최자가 낸 "보한집"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고려시대의 글과 문학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거리들을 모아 놓은 책으로 이인로가 낸 "파한집"의 속편을 자처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보한집"의 책 맨 처음 시작 부분이 다름 ...

40년 공업이 집안 일 때문에 하루 아침에 망하는구나
박영규

936년의 일입니다. 후백제의 임금 견훤은 군사적 재능으로는 대단히 출중했던 인물입니다. 아마도 전략과 전술로는 왕건을 압도했던 것 같은데, 그런데도 결국 후백제는 고려에 패배했습니다. 견훤은 그런 상황이 너무 이상해서 본인 스스로도 "군사들 싸우는 것을 보면 우리가 항상 이기는데 어떻게 세월이 지날 수록 고려가 더 강성...

학문은 백성을 편안하게 무기는 해치려는 자를 막게
공직

932년의 일입니다.공직은 후삼국시대에 지금의 충북 보은 지역인 매곡에서 세력을 키워 자신을 장군이라고 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견훤의 동맹이 되어 두 아들과 딸을 견훤에게 볼모로 보냈습니다. 공직이 다스리던 매곡도 후백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그러다 한번은 견훤의 궁전에 갔다가 무엇인가 도에 크게 어긋났다는 생...

편식은 불효 불충 / 오이 덩굴에 참외 열렸다
최응

아마도 930년 전후의 일일 것입니다.최응은 글을 잘 짓고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과거 아주 어릴 때부터 학문에 뛰어난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궁예도 그 실력에 감탄했고 궁예가 임금일 때부터 최응은 벼슬자리에서 빠르게 승진했습니다.궁예가 왕건을 의심해서 왕건이 죽을 위기에 놓였을 때 꾀를 알려 주어 왕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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